[2030 세상/홍형진]분노와 무시가 가득한 담론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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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소설가
홍형진 소설가
글을 써서 먹고살다 보니 여기저기의 여론을 살펴보는 편이다. 어떤 이야기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다. 한데 둘러볼 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담론장 곳곳에 분노와 무시가 스며 있다는 것이다. 완화는커녕 점점 심해져서 이젠 그 둘이 우리 사회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지경이다. 최저임금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경제성장률의 몇 배를 웃도는 인상률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도리어 취약계층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팍팍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합당한 정책이며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소비도 촉진된다는 시선이다. 이 글에선 뭐가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제쳐두고 의견을 주고받는 태도에 집중하고자 한다.

두 집단 모두에 분노와 무시가 가득하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반대하는 측은 최근 실물경제 지표와 소득분배 지표가 나란히 악화됐다며 정부의 실책을 비판한다. 아울러 중요한 경제 정책이 전문성보다는 정의감에 좌우된다는 데 분개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법한 반응이다. 문제는 그것이 상대를 적대시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발생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를 기초적인 경제 지식이 없는 무지렁이로 취급하거나 싸잡아서 과거 운동권의 잔재 등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갈등만 키울 뿐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찬성하는 측은 양극화에 따른 고통을 호소한다. 실제로 1990년대와 비교해보면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층의 비중은 7.4%에서 14%로 높아졌고,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75%에서 55%로 하락했다. 그들의 분노에도 이유가 있단 소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를 몽땅 기득권자, 적폐, 자본의 앞잡이로 몰아가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들 또한 양극화 완화가 사회적 과제임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에 미칠 충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하자는 게 정확한 입장이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소상공인이라면 더욱 절박할 수 있겠다.

분노와 무시가 담론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선 조리돌림이 왕성하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포스팅이나 관련 기사를 박제하듯이 전시하며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그러면 우르르 몰려들어 함께 비난하는데 그 과정에서 메시지는 사라지고 메신저만 남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편을 이뤄 상대 집단을 배척하는 분위기에선 그럴 수밖에.

삶을 이야기해야 할 담론장에서 정작 삶에 대한 성찰이나 숙의는 변두리를 맴돌고 있다. 숫자에 매몰된 지적 유희와 감정에 편중된 분노 토로가 중심에 선 지 오래여서 토론의 태반은 조롱과 경멸로 귀결된다. 사실 다들 알고 있다. 존중 두 글자에 답이 있다는 걸. 하지만 실천하는 방법은 도통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어느 패거리의 일원으로서 누군가에게 칼을 휘두르고 다니지 않을까?
 
홍형진 소설가
#여론#최저임금 논란#담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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