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홍형진]태극기와 붉은 셔츠를 파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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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소설가
홍형진 소설가
두 갈래의 애국심을 한곳에서 만났다. 한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경기를 앞둔 6월 23일 늦은 오후의 광화문광장이었다. 한쪽에선 거리 응원을 위한 스크린을 설치하며 슬슬 분위기를 띄우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선 현 정권을 규탄하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이었다. 한발 떨어져서 이를 보노라니 묘한 이율배반이 느껴졌다. 양쪽 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애국심을 고양했지만 그 정서와 결은 확연히 달랐다.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기색이 은근했고 경찰 또한 혹 충돌할까 봐 경계하는 낌새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내 눈을 확 잡아끌었다. 바로 태극기와 붉은 셔츠를 파는 장수였다. 중년과 노년의 경계로 보인 그는 리어카 가득 물건을 싣고 두 집단을 오가며 호객했다. 양측의 교점이 애국심인 데다가 두 행사 모두에 유용한 소품이어서 누구도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 세대와 정서가 다른 두 집단을 자유자재로 오간 유일한 존재가 바로 그인지도 모를 일이다.

생활인. 그 모습을 본 내 머릿속에는 이 세 글자가 떠올랐다. 그에겐 세대, 정치관, 정서 같은 문제는 뒷전이었을 테다. 아마도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난 그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다양한 견해와 감성을 갖고 살아가며 때로는 갈등도 빚지만 각자의 생계를 위한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인이라는 점은 모두가 똑같다. 만약 그 장수가 이쪽에선 이쪽 구미에 맞는, 저쪽에선 저쪽이 선호하는 언행으로 호객했을지라도 나는 온전히 이해할 것이다. 나 역시 매체와 꼭지의 속성에 따라 문체나 어조를 달리하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멕시코전이 끝나고 여론을 보다가 더욱 심화됐다. 그날 한국 대표팀의 두 차례 실점 과정엔 몇몇 선수의 큰 실수가 있었다. 해서 십자포화가 가해졌는데 일부 축구 팬은 이런 논리를 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 도전해서 실력 향상을 도모하지 않고 손쉽게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아시아 리그에 안주한 탓이라고. 실제로 논란이 된 선수들은 모두 중국, 일본 등에서 오래 뛰었다.

나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기에 위 주장의 진위는 모른다. 다만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그 선택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운동선수는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이 짧고 부상 위험도 크다. 언제 커리어가 끝날지 모르는 입장에서 안정적인 고소득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유럽 진출 역시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전자는 모든 걸 얻고 각광받지만 후자는 깨끗이 잊히기 십상이다. 요약하면 강한 대표팀을 바라는 팬과 생계를 포함한 자기 삶이 걸린 선수의 이해관계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단 소리다.

생활인 세 글자로 복잡한 세상사를 속속들이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교점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경기력을 비판하는 건 팬의 권리일 수 있으나 그를 빌미로 누군가의 삶을 매도하는 건 과하다. 솔직히 말하자. 다들 좀 더 편하고 월급 많은 직장을 꿈꾸지 않나?
 
홍형진 소설가
#러시아 월드컵#태극기#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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