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홍형진]양심 잃은 문학을 누가 읽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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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소설가
홍형진 소설가
큰 권력을 비판하는 건 쉽다. 정재계의 거물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경우는 좀체 드물다. 곧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팬덤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권력을 비판하는 건 정말 어렵다. 직장 상사, 거래처 직원, 업계나 학계의 유력자 등이 그 예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성을 보일 때가 잦다. 남 얘기 할 때만 목소리를 높이고 정작 자기 영역에선 침묵한다.

문인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선각자라도 되는 양 글 솜씨를 자랑하지만 막상 문학판에 논란이 일면 입을 다문다. 최근 몇 년 사이 화제가 된 신경숙 표절, 문단 내 성폭력 등에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문인은 몇 안 된다. 어느 정도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자로 한정하면 사실상 전멸이다.

2016년 11월에 문단 내 성폭력 건으로 MBC ‘PD수첩’에 잠시 출연했다. 여러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다들 거절하는 통에 나에게 왔단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아무도 모르는 무명 소설가여서 별 권위가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문인과 교류를 거의 않고 살아서 문단 분위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계속된 요청에 내가 알고 느끼는 선에서만 이야기했다.

나중에 방송을 보니 신원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보탠 작가는 나밖에 없었다. 평론가, 사회학자, 심리학자는 공개적으로 견해를 밝히는데 작가는 아니었다. 다들 “난 할 말 없다”, “난 여기서 빼달라”며 발뺌했고, 용기를 내 출연한 여성 소설가 역시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처리된 채 익명으로 인터뷰했다. 이야기하는 자체가 부담스러움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내가 등단하던 날 뒤풀이 자리에서 (같은 날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선배 소설가가 이렇게 말했다. “문단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혼자서 우직하게 쓰세요.” 돌이켜 보니 두 생각이 상충한다. 내가 살면서 들은 가장 알찬 충고로 여겨 감사해하는 동시에 근래의 분위기를 볼 때 문단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지는 것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문학판의 일부 인사는 그를 폭로한 소설가의 평소 성격과 태도가 나쁘다며 분란을 일으키는 저의가 뭐냐고 분개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인의 성추문을 두고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고발한 시인을 이상하고 드센 여자로 라벨링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단 주류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며 실력 없는 루저로 몰아가는 것도 판박이.

우린 내부 고발자에게 관대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한 직원이나 교수의 전횡을 고발한 대학원생의 상당수는 어떻게든 덮으려는 회사와 학교에 질려 그곳을 떠난다. 최근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낸 검사도 현재 사무실을 빼앗긴 상태다. 문학과 문인 또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기에 매한가지 아닐까? 유독 문학에만 관대한 것은 그들이 유난히 나쁘고 형편없는 집단이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한국 사회를 정확히 반영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

근래의 논란을 두고 나이 지긋한 몇몇 문인이 가당찮은 언사를 내뱉는다. 기행을 예술적 기질로 포장하고, 적당히 덮는 관대함을 요구하며, 때로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한다. 그들에게 젊은 세대의 SNS를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더 이상 한국 문학을 읽지 않겠다는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작가의 몫이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문학 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우리 말이다. 그들이 정말 ‘원로’라면 일말의 책임감을 갖고 말하길 바란다.
 
홍형진 소설가
#문단 내 성폭력#신경숙 표절 논란#내부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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