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24>몰레 소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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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셰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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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셰프
정동현 셰프
고기 굽는 난이도로만 치면 삼겹살은 하수고 양념돼지갈비는 상수다. 삼겹살은 덮어놓고 굽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양념돼지갈비는 간장 양념 때문에 불길이 스치기만 해도 까맣게 그을리기 일쑤다. 그럼 어김없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모부터 찾는다.

“이모, 여기 가위 좀 주세요.”

그 다음엔 누군가가 외과의라도 된 것처럼 탄 부분을 오려낸다. 그럴 때마다 “나 탄 거 좋아해”라며 내 몫은 그대로 놔두라고 한다. 이런 말 하면 암 공포증에 절어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질색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 마시옵소서. 어마마마. 몸에 해로울 정도가 되려면 탄 음식을 대략 t 단위는 먹어야 한다.

중국 요리 먹을 때 흔히 말하는 ‘불 맛’도 사실은 탄 맛이다. 식당에서는 가정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력의 가스 불을 쏴주는데, 이때 중국 냄비 웍(wok)의 온도는 600∼700도까지 올라간다. 시뻘겋게 달군 웍으로 요리를 하면 구운 맛을 넘어 섬세한 탄 맛이 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탄 맛의 맹주는 따로 있다. 멕시칸 요리의 아이콘이자 살사 소스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몰레 소스다. 한국의 태양초보다 훨씬 검고 큰 마른 고추와 양파, 마늘까지 모조리 태워서 만드는 것이다.

몰레란 말 자체가 소스란 뜻이니 몰레 소스는 ‘소스 중의 소스’쯤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소스 중에 가장 진하고 강하며 원초적이며 거칠다. 재료와 만드는 과정을 보면 왜 이런 맛이 나는지 알게 된다.

몰레 소스는 노란색부터 검은색까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여기서는 가장 유명한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를 소개할까 한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이 소스를 만드는 방법은 복잡하고 들어가는 재료도 한정이 없다. 그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고추다. 할라페뇨를 말려서 훈제한 치포틀레 고추와 건포도를 검게 구워 물에 불린 다음, 따로 구워 놓은 마늘, 양파, 토마토 그리고 닭 육수와 함께 믹서에 간다. 그 다음은 씨앗이 등장할 차례다. 아몬드, 호박씨, 계피, 참깨, 고수 씨, 통후추, 정향, 토르티야를 갈색으로 구워 돌절구에 빻는다. 그리고 달군 기름에 모든 재료를 넣고 볶듯이 졸이다가 다크 초콜릿을 넣는다. 초콜릿은 달고 쌉쌀한 풍미를 줄 뿐 아니라 색을 진하게 하는데 더이상 어쩌고저쩌고할 것 없이 그냥 맛있다. 이윽고 간을 하면 드디어 몰레 소스가 완성된다. 올레!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각종 육류 요리에도 다양하게 잘 어울린다. 가장 흔한 게 몰레 소스에 익힌 닭고기 요리다. 초콜릿까지 더해진 몰레 소스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닭고기인지 쇠고기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더해진다. 흰 쌀밥까지 곁들이면 음양의 조화가 따로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몰레 소스 앞에 ‘뭐와 뭐가 잘 어울린다’는 말은 좀스러워 보인다. 그 속엔 없는 게 없다. 고추, 건포도, 마늘, 양파, 온갖 향신료에 다크 초콜릿까지. 불에 태운 고추와 검은 초콜릿의 만남은 어딘지 주술적인 불온함에 태곳적 원시문명의 분위기까지 풍기고, 복잡다단한 조리 방법은 몰레 소스의 길고 긴 역사를 방증한다. 수백 년에 걸쳐 더해지고 빠지고 다듬어진, 섬세하고 치밀한 레시피의 위대함이여.

때로 요리는 이렇게 우리를 다른 시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기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쌓아온 역사를 느끼고 문화를 이어가는 고결한 행위다.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어쨌든 달다, 짜다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복잡하고 깊은 몰레의 그 맛을 어디서든 일단 맛보시라. 그럼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 모든 ‘불 맛’이 모여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태고의 맛이 거기에 있음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3)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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