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벽창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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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얼마 전에 ‘답정너’라는 말이 유행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다. 일방통행식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비꼴 때 쓰는 말이다.

 신조어가 아니라도 우리말에는 일방통행을 비꼬는 낱말이 적지 않다. 벽창호, 고집불통, 독불장군, 막무가내, 목곧이 등이다.

 ‘벽창호’는 고집이 세며, 말이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을 뜻한다. 마치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사람을 말한다. 벽창호를 혹여 벽에 붙이는 창호지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벽창호는 평안북도 벽동(碧潼)군과 창성(昌城)군 지방에서 나는 크고 억센 소를 가리키는 ‘벽창우(碧昌牛)’에서 왔다. 함경북도 ‘명천에서 나는 태(太)’를 ‘명태’라 하고, 경남 ‘통영에서 나는 갓’을 ‘통영갓’이라 하듯 벽창우는 지명과 특산물이 합쳐진 이름이다.

 명태와 통영갓은 아직까지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데, 벽창우는 벽창호로 변하면서 뜻까지 바뀌어버렸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즉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벽창호다’ ‘벽창호 같다’고 한다. 사람들이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해서일 것이다.

 벽창우처럼 뜻이 나쁘게 바뀐 낱말이 또 있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이 말, 원래 억척스러우며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가리켰는데, 지금은 자기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투는 것을 비유할 때 쓴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어떤가. 이 낱말의 사전 풀이 또한 복잡하고 모호하다. ‘무슨 일이든 자기 생각대로 혼자서 처리하는 사람’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남과 의논하고 협조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앞의 설명은 부정적인데, 뒤의 설명은 긍정적이다.

 뜻과는 상관없이 많은 이가 입길에 올리는 ‘독불장군 없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독불장군 없다고 우리 힘을 합해 잘해보자’처럼 써선 안 된다. ‘독불장군이라고…’처럼 고쳐 써야 옳다. 독불장군이란 말 속에 ‘불(不)’이란 부정어가 들어 있으므로 ‘없다’를 다시 붙일 이유가 없다.

 ‘목곧이’는 ‘억지가 세어서 남에게 잘 굽히지 않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목에 깁스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세상에는 꼭 선하고 곧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요즘 사태는 잘 보여준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답정너#벽창호#고집불통#독불장군#막무가내#목곧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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