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의 ‘100세 시대’]“너도 내 나이 돼 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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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체험 장비를 입고 여든 살 나이의 신체 상태가 된 채로 움직이고 활동하게 하는 ‘노인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본 경험에 의하면, 가장 열띤 반응을 보이는 연령대는 40, 50대 중장년층이다. 체험이 끝나고 느낀 점을 말하는 시간에 눈물바다가 된 적도 있다.

50대 후반 여성이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이런 체험을 진작 해 봤다면 좀더 잘했을 텐데,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헤아렸을 텐데…”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자 참석자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79세 어르신의 ‘병원동행’ 자원봉사활동을 한다는 40대 초반의 L 씨도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그 어르신 병원에 모시고 다닐 때마다 솔직히 짜증을 많이 냈어요. 행동이 얼마나 굼뜬지 속이 터져서 ‘할머니, 이러다 늦겠어요. 빨리 가요’라며 우격다짐으로 차에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보니 그 할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얼마나 민망하고 고통스러웠을까요?”

노인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태도가 진지하고 반응이 좋은 이유는 ‘나이’ 때문이다. 부모뿐 아니라 자신도 늙어가고 있고, 머잖아 부모의 상태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반면 체험자의 나이가 젊을수록 노인체험은 ‘고역’의 시간이다. 80세의 신체적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등을 굽게 하고, 팔꿈치와 무릎의 관절을 부자유스럽게 하고, 손목·발목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무겁게 하는 여러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교생들은 노인체험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열심히 귀를 기울이다가도 막상 체험 장비를 착용하면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체험 후 느낀 점을 발표하는 시간에 “늙으면 빨리 죽어야겠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하는 중학생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노인체험 학습효과는 매우 크다. 노인을 이해하고 노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저씨들도 이 체험을 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어르신들이 버스 탈 때 ‘어이, 빨리 타쇼’라고 소리치지 않을 테니까요”라고 말하는 중학생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인은 게으르고 의존적’이라는 편견도 많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전남 순천의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고교생의 막말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 봉사활동 처분을 받은 고교 2학년생 장모 군(17)이 치매를 앓아 병상에 누워 있는 89세 여자 어르신에게 “(무릎을) 꿇어라. 이게 너의 눈높이다”라고 외치는가 하면 73세 어르신에게도 “여봐라. 네 이놈.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게다가 함께 온 친구(17)는 장 군이 막말하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주변에 자랑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동영상을 올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학교 조사에서 “할머니들이 웃고 좋아해서 장난을 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청소년들이 어르신(특히 노화로 거동이 불편해진 어르신)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태라는 걸 보여준다. 조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노인을 이해하고 인간의 늙어가는 과정을 체득한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어린 학생들에게 노인이란 이해하기 힘든,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인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이해 부족이 ‘노인 학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 언급된 학생들의 말과 행동은 엄연한 노인 학대에 해당된다. 흔히 때리거나 밀어서 상처를 주는 ‘신체적 학대’만을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겁주기, 굴욕감 주기, 어린애 취급하기 같은 ‘정서적·심리적 학대’, 욕설, 비난, 놀림 등의 ‘언어적 학대’ 또한 심각한 학대 행위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린 학생들에게 노인의 처지가 되어 보도록 하는 ‘체험학습’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노인을 이해하고 공경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노인의 처지가 되어 직접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용산구, 경기 성남시, 광주시, 대구시, 그리고 일부 대학의 노인생애체험관, 고령친화체험관, 노인·장애인체험관 등에서 노인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런 체험학습이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체험교육이 노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100세 시대에는 누구라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다문화적 감수성’ 못지않게 ‘다연령적 감수성’도 갖춰야만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노인체험 프로그램#나이#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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