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문재인 김이수 김선수, 그리고 통진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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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반대 의견 낸 김이수, 헌재소장 지명되고
통진당 변호인단 단장 맡은 김선수, 대법관 후보 추천돼
국민 뜻 反한 해산 반대자로 사법기관 채워선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서 해산에 반대하는 유일한 소수의견을 냈다. 전체 결정문 346쪽 중 절반 이상인 180쪽에 이르는 그의 소수의견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가 위헌정당 해산 제도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실효성이란 측면에서 해산된 정당이 외견상 합헌적인 강령을 제정하고 활동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예상은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거니와 실제 전개와도 맞지 않다. 통진당이 해산된 후 후속 정당이 만들어졌지만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반면 이석기 문제를 둘러싸고 통진당과 갈라선 정의당은 종북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낸 진보정당으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로부터도 따뜻한 반응을 얻고 있다. 통진당 해산은 실효성이 있었다.

더 문제가 많은 이유는 정당해산제는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율적 의사결정에 중대한 제약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은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분단 상황을 고려해 정당해산제를 채택하는 결단을 내렸다. 헌법재판관은 법률 위에서 판단하지 헌법 위에서 판단하지 못한다. 헌법 조항 자체를 의문시하는 주장은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지만 헌법재판관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분단을 겪었던 독일은 통일된 지금도 정당해산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 재판관은 압도적인 강제 해산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정당 해산 결정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지만 압도적인 강제 해산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가 통독 전 서독 연방헌법재판소의 공산당 해산까지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의 기준으로는 이 세상에 강제 해산할 정당은 없다.

김 재판관은 이석기 일당이 통진당 내에서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통진당을 해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진당이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 같은 강령이 반(反)민주적이기는커녕 민주주의 심화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유타 림바흐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라는 책에서 “위헌정당 심판은 전체 정치 상황에 대한 정확한 개관뿐만 아니라 정당의 음모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한다”고 썼다. 위헌법률 심판이나 헌법소원 심판은 사법적 판단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위헌정당 해산 심판은 사법적 판단을 뛰어넘는 정당의 음모에 대한 통찰까지 요구한다.

통진당은 북한의 전쟁 개시에 호응해 평택 석유비축기지, 혜화 전화국, 철도 시설을 파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석기 일당이 부정 경선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도 막지 못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념을 표방한 정당을 내세우고 지하에서 활동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개적인 자리로 솟아올라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방식은 레닌주의 정당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정당의 음모를 가장 잘 알 만한 재판관이 다른 재판관들은 모두 알아차린 음모를 혼자만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순진한 것인지 순진한 척한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총리나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은 김 재판관이 가진 사고의 문제에 비하면 한가로운 얘기다. 김 재판관이 재판관으로 있으나 헌재소장으로 있으나 어차피 헌재 결정에서 한 표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이하다. 통진당 해산 사건에서 통진당 측 변호인단의 단장을 맡은 김선수 변호사는 지금 대법관 후보로 추천돼 있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김 재판관의 헌재소장 임명은 김 변호사의 대법관 임명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김 재판관은 2012년 문 대통령이 속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추천 몫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김 변호사는 2005년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비서관이었을 당시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통진당 일부의 일탈이 통진당 해산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이들과 동일한 논리를 펴왔다. 통진당 해산 결정의 정당성을 뒤집어야 자신의 면목이 서는 동질감이 형성돼 있다. 이런 동질감이 사법권력에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둬선 안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김이수#독일 연방헌법재판소#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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