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人民탄핵 막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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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뇌물죄 영장 기각되자 국회, ‘헌법위반’ 위주로 소추 변경
해석의 여지 많은 헌법위반…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면 안 돼
헌재도 역사에서 최종심 아냐… ‘법률위반’부터 엄밀히 밝혀내야 후대의 인민탄핵 비판 면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 국가 중에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나라는 드물다. 대통령제는 주로 미국과 중남미 국가의 제도다. 거기서 탄핵은 의회가 맡는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헌재가 탄핵을 맡지만 의원내각제 국가다. 그 나라들의 실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로, 총리 경질은 사법적 탄핵이 아니라 정치적 불신임을 통해 이뤄진다.

 헌재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한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말은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 사안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관에 법률 전문가를 임명하지 정치 전문가를 임명하지 않는다. 사법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면 굳이 법률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기관인 의회가 탄핵하는 미국의 경우 탄핵심판장은 연방대법원장이 맡고 탄핵 사유는 ‘반역죄 수뢰죄 또는 그 밖의 중대한 범죄와 비행’이라고 못 박고 있다. 정치기관이 탄핵을 맡는 만큼 탄핵 사유만은 형법적으로 규정해 사법적 심판이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정치적 불신임을 하듯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대통령이 실권자인데도 헌법상 탄핵 사유인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때’는 독일 기본법을 베꼈다. 헌법 기안자들은 한국 대통령은 의회에서 간접 선출하는, 실권도 없는 독일 대통령과 다르다는 사실까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재는 ‘법률 위반’이 아니라 ‘중대한 법률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된다고 결정해버렸다. 한 대법관은 ‘중대한’이라는 수식을 제멋대로 집어넣은 헌법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도 틀리진 않았지만 헌재도 어쩔 수 없었다. 독일 대통령은 경미한 법률 위반으로 탄핵해도 별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그런 정도의 법률 위반으로 탄핵할 수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헌법 위반’이 관건이다. 국회는 헌법 위반을 앞세워 탄핵소추했다. 그리고 법률 위반으로 가장 중대한 뇌물죄의 성립이 불투명해지자 애초에 법률 위반이라고 했던 것까지 다 예비로 돌리고 헌법 위반으로 고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대통령은 국회해산권이 없다. 그런데도 국회를 해산하려 한다면 분명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여성 법학자 유타 림바흐가 저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썼듯이 헌법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직접 적용 가능한 규정이 아니다.

 헌법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개방적 규범이다. 그래서 위헌 시비는 숱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위헌이라 하더라도 다 처벌 가능한 위헌이 아니다. 어떤 행정조치가 헌법소원을 통해 헌재에서 위헌으로 결정돼도 그 조치가 취소될 뿐 조치를 취한 공무원이 처벌받지는 않는다. 처벌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헌법의 가치는 대개 법률로 구현돼 있다. 법률 위반이 되지 않는 헌법 위반은 탄핵할 정도로 중대한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막연히 헌법 위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지지 기반을 잃는 순간 탄핵될 위기에 처한다. 헌법에 탄핵 사유로 나와 있는 헌법 위반이 탄핵 사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헌법 위반은 최소화해서 적용해야지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적용하면 사법적 탄핵이 정치적 불신임처럼 변질될 수 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헌법 위반으로 탄핵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같은 찌라시에 연루돼 언론의 자유 위반으로 탄핵된다면 세계가 부러워할까 비웃을까. 대통령이 비선(秘線)에 집착한 것은 한심하지만 대통령이 결정권을 행사한 이상 국민주권 위반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세월호 7시간은 그런 억지를 진지하게 다뤄주는 헌재가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헌재는 대통령의 강요죄 등 법률 위반 혐의를 검토하기에도 벅차다. 탄핵심판에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하라는 법조문이 있어서가 아니라 법관의 입장에 서서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정의 근거들이 법원에서 ‘탄핵’될 수 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아니라 소명 부족으로 기각된 사실이 그런 위험을 보여준다.

 헌재도 역사에서는 최종심이 아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인민탄핵’했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헌법재판소#박근혜#탄핵#정치적 사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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