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4일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참사’ 수준의 고용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단기일자리 5만9000개를 만드는 게 대책의 핵심이었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기자들은 저마다 어떤 내용을 앞세워 기사를 정리할지 고민한다. 자료를 살핀 뒤 ‘공유교통’을 기사의 맨 앞에 담았다. 정부가 두 달 뒤인 그해 말까지 카풀, 우버 등 공유교통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안을 확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단 내에선 “카풀은 정치적 논쟁거리라 도입이 쉽지 않다”, “알맹이가 없는 걸 보니 구색 맞추기로 대책에 담은 것 같다”며 다른 소재를 앞세워야 할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필자는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정부가 허투루 대책에 넣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공유교통’을 기사 첫 문장에 담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임으로 지명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내정 당일인 지난해 11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유경제는 사회적 파급역량이 큰 ‘빅 이슈’”, “선진국에서 하는 보편적인 서비스면 한국에서도 못할 바 없다”며 도입을 시사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한 택시기사가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분신해 숨을 거둔 뒤부터였다. 정부와 물밑에서 택시사업자를 위한 보상안을 만들던 국회가 카풀 도입 반대로 방향을 틀었다. 정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국회 기류를 잘 아는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회 카풀 도입 태스크포스(TF)가 카풀 저지 TF가 됐더라”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당초 공유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려던 연말이 가까워오자 “이번엔 진짜 되는가 싶었는데…”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젠 정부마저 언제 공유교통을 추진했냐는 듯 말을 아끼고 있다. 홍 부총리는 최근 강연에서 “이해 당사자들끼리의 타협”을 강조하며 사업자끼리 해결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고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번 정부가 정말 공유서비스를 도입할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정부는 “이 정도 규제도 못 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젠 이 정도 규제도 못 푸는 정부가 되어도 괜찮은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과제를 꺼내놓고 변죽만 울리다 만 건지 헷갈린다.
공유교통 도입을 먼저 거론했던 정부가 “사업자들끼리 우선 잘 해결해 보세요”라며 한발 물러선 사이 택시업계와 ‘타다’, ‘쏘카’ 등 공유교통 사업자들은 서로를 검찰에 고발·고소하며 이전투구 중이다. 사업자끼리 대타협을 하기는커녕 사회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가 정말 공유교통 서비스가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사업자끼리 난타전을 펼치게 두지 말고 최전선에 나서 이해관계를 조율했어야 한다. 꼭 지금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플랜B’라도 마련해야 한다.
택시업계와 공유교통 사업자들은 생존을 걸고 싸우는데 “당사자 간 타협”이라는 느긋한 소리만 하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가 정말 ‘헛발질’을 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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