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의 뉴스룸]위기 때 돋보인 카타르의 소프트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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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중동 주요 국가들이 지난달 5일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가 다수의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웃 국가들과 경제·사회·외교적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다 미운털이 박힌 카타르가 기대 이상으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가 위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란 사태 초 전망은 이제 ‘카타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란 평가로 바뀌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단교 국가들이 적대시하는 이란의 지원과 천연가스 판매를 통한 카타르의 재정 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소프트파워 역량’을 앞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카타르의 전략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달 24, 25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위협에 직면한 표현의 자유’ 콘퍼런스가 대표적인 예다. 카타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언론인협회(IPI), 국제기자연맹(IFJ)과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 유네스코, 유럽방송연맹(EBU) 같은 국제기구와 언론단체에서 200명 이상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카타르는 이번 행사를 통해 단교 선언 국가들이 요구하는 ‘알자지라방송 폐쇄’ 같은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동이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콘퍼런스는 ‘알자지라를 포함한 일부 카타르 언론사의 폐쇄를 요구하는 사우디 등의 위협을 단호하게 규탄한다’와 ‘알자지라 등 폐쇄 요구를 받고 있는 카타르 언론사와 유관기관들의 종사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명한다’는 권고문까지 발표했다. 반(反)카타르 진영에선 급조된 단순 보여주기 행사라고 비하한다. 그러나 카타르 입장에선 IPI, IFJ, OHCHR 같은 유명 기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단교 참여국들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단교 국가들을 제대로 약 올리는 이벤트였다는 반응도 있다.

단교 국가들이 테러단체라고 주장하는 ‘무슬림형제단’ 등에 대한 지원도 카타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우선 중동에서 무슬림형제단이 무조건 테러단체로 인식되는 건 아니다. 카타르는 해외 명문대 분교로 구성된 에듀케이션시티와 자국 대학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하며 중동의 ‘교육 허브’를 지향했다. ‘극단주의 보호가 아니라 다양한 사상을 받아준 것이다’란 카타르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증이 충분한 것이다.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국제학부의 제임스 도시 박사는 “알자지라 운영과 정치적 망명 수용으로 카타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미래를 구상하는 사상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항공사인 국영 카타르항공이 최신 광고에서 ‘하늘, 이곳에는 국경이 없다. 여행은 국경과 편견마저 뛰어넘는다’는 카피를 앞세운 것도 일반인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단교 사태를 극복하는 카타르의 행보는 한 나라, 특히 작은 나라의 소프트파워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의 여건은 다르다. 또 카타르가 이번 위기의 진정한 승자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소프트파워 역량을 통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전략 등은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한국을 포함해 위기관리가 필요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에는 더욱 그렇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카타르 단교 사태#소프트파워#무슬림형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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