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의 뉴스룸]사드 복안은 시간 벌기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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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 기자
문병기 정치부 기자
“나에겐 복안이 있다”는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표면적으론 그저 “숨겨둔 방안이 있다”는 말로 들리지만 방점은 ‘숨겨둔’에 찍혀 있다.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묘안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대 외교안보 현안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자주 듣는 단어가 바로 이 ‘복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최종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겨준다면 그 문제를 외교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수차례 말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논란이 불거진 뒤 지명된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지명 발표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사드, 북핵·미사일에 대해 복안이 있지만 청문회 때도 비공개로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마치 ‘복안’이 사드를 둘러싼 일각의 불안과 갈등을 가라앉히는 주문 같은 느낌이다.

‘복안’이라는 말에는 숨겨둔 방안을 당장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나를 한번 믿어 달라’는 뜻이 깔려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전장의 원칙이 적용되는 중차대한 외교안보 협상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카드를 공개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복안’이라는 말로 상대를 긴장시켜 먼저 패를 보이게 하거나,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블러핑’도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복안이 실망만 남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이다.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의 복안이 있다. 아직 밝힐 시기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취해진 조치는 대북 압박을 통한 북한의 변화 촉구라는 의례적인 조치였다. 오히려 북한은 정부가 보낸 4차례의 전화통지문 수신을 거부하고 빗장을 걸어 잠갔다. 물밑에서 어떤 비장의 카드가 사용됐는지는 몰라도 정부의 복안을 믿고 기다렸던 이들에겐 실망과 불신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복안은 출발이 그리 좋지 못하다. 투명한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불만과 불신을 키운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여권 관계자는 “사드 복안은 이제 시작”이라며 “사드 배치를 중단하는 동안 중국, 러시아 등과 다양한 협력 과제를 논의하면서 사드 문제 해결을 모색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종의 ‘패키지딜’을 통해 묘안을 찾아내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남는다. 사드 복안의 밑그림을 놓고 청와대 안팎에서는 ‘사드 철회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시간 벌기→남북관계 개선→사드 철회’로 갈 것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복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다행이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혼선만 빚어지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복안은 유력한 대책이 있을 만한 상황에서 효과가 극대화된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카드를 들고 복안이라고 주장해봐야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오히려 기대감을 높였던 이들의 배신감만 커질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복안이 국내용 시간 벌기에 그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병기 정치부 기자 weappon@donga.com
#사드 복안#사드#사드 철회#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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