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핀란드의 디자인 독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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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핀란드 수도 헬싱키 중앙역에서 트램 3번을 타고 남쪽으로 5분 정도 가면 빌스쿨라마 정거장이 나온다. 이 일대는 200개 이상의 공방, 화랑, 카페 등이 모인 ‘디자인 디스트릭트’. 의자, 조명, 침구 등 최고의 핀란드 디자인 제품들을 구입하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매년 가을 혁신적인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는 행사인 ‘디자인 위크’도 열린다. 관광 비수기에 열리는 디자인 위크엔 사람들이 몰려 헬싱키의 숙박비가 껑충 뛴다.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는 핀란드는 일찌감치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식민지 시절인 1875년 핀란드공예디자인협회를 세워 디자인 발전에 힘썼다. 그러나 당시 핀란드의 디자인은 식민 종주국이었던 러시아, 스웨덴의 영향을 크게 받아 별다른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독립을 선언한 핀란드는 디자인 독립도 필요했다. 건축 및 디자인 거장인 알바르 알토(1898∼1976)는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193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형성하며 1950∼1970년대 인지도를 높이고 황금기를 구가했다.

핀란드는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면 항상 디자인을 고려했다. 1970년대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새로운 물질이 등장하자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색과 형태로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80년대 인체공학, 환경 등의 이슈가 떠오르면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 더 중요해졌다.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핀란드 디자인의 정체성은 확고해졌다. 1980년대 말 핀란드공예디자인협회는 디자인 경쟁력 강화 및 해외 홍보를 위한 별도의 조직인 ‘디자인 포럼’을 만들었다.

위기에서 돌파구로 선택한 것도 디자인이었다. 1991년 12월 소련이 무너지자 인접국인 핀란드의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금융기관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실업률, 국가채무, 인플레이션이 높아졌다. 핀란드는 긴 안목으로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며 지식기반의 국가를 만들기로 했다. 디자인은 당연히 지식기반 중 하나였다. 1996년 핀란드연구개발펀드는 전문가들을 모아 경제성장 방안을 토론했고 디자인 혁신이 핵심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2005년 디자인 포럼은 고용 및 제품 경쟁력 향상을 위한 디자인 사용 확대 등 핀란드 디자인의 전략을 세웠다.

100년 전 핀란드 디자인은 별다른 정체성이 없었다. 러시아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디자인도 차용했다. 하지만 100년 이상 ‘축적의 시간’을 가지며 단순하지만 실용적인 ‘핀란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핀란드 디자인은 천연자원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식기반 중심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디자인 서울, 디자인 코리아 등 국내에도 디자인 관련 구호는 넘친다. 하지만 아직도 디자인 독립에는 축적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핀란드가 100년 이상 민간 주도로 꾸준히 디자인 혁신을 일궈낸 걸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디자인 디스트릭트#핀란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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