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일본, ‘이듬해의 법칙’으로 헌법 개정 향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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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화해와 日 민족감정 발로, 1년 간격으로 되풀이
위안부 문제와 헌법개정에도 ‘이듬해의 법칙’ 노릴 수도
2016년 여름 참의원선거가 관건 균형추 어디로 기울지 궁금해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전 아사히신문 주필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올해 초부터 헌법개정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재임 중에 실현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이 아베 총리의 비원(悲願)이라고는 하지만 왜 지금 이것을 눈앞의 과제로 삼은 걸까.

내 생각이 멈춘 곳은 지난해 말 한일 양국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다. 자신의 지론을 크게 양보하고 한일 화해에 나선 아베 총리가 신년 벽두부터 개헌을 끄집어낸다. 이는 ‘이듬해의 법칙’을 노린 게 아닐까.

‘이듬해의 법칙’은 실은 내가 발견해 명명(命名)한 것에 불과하므로 아베 총리는 알 리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50년 전부터 한국이나 중국과 화해의 전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 이듬해에 국내 민족 감정에 부응하는 법률 등이 만들어졌다. ‘법칙’이란 그것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첫 사례는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국교가 수립된 1965년이었다. 조인의 결정타는 일본 외상이 서울을 방문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 이듬해에 일본에서는 2월 11일을 건국기념일로 정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초대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즉위했다는 신화에 기초해 이날을 ‘기원절’이라 부르며 성대하게 축하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폐지됐던 이날을 부활시키자는 보수 세력의 요구에 부응해 새로이 축일로 정한 것이다.

일중 국교가 수립된 70년대에는 78년 일중평화우호조약이 결성된 이듬해에 원호(元호)법이 생겨났다. 메이지(明治)나 쇼와(昭和) 같은 일본 전통의 연호(年號·원호)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해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유사한 예는 1980년대에도 있다. 1984년에 전두환 대통령이 첫 국빈으로 방일했을 때 쇼와덴노(昭和天皇)가 처음 과거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였다. 그는 이듬해 8월 15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대대적으로 공식 참배해 우파의 기대에 부응했다. 중국의 격한 반발에 부딪혀 이듬해부터 그만뒀지만 거기서도 화해와 내셔널리즘 사이의 흔들림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아시아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총리의 사죄가 이어졌다. 그 정점은 1998년에 방일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오부치 총리가 식민 지배를 사죄하고 김 대통령이 ‘화해’로 화답했다. 같은 해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도 일본을 방문해 비슷한 ‘일중공동선언’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일본에서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정식 국기와 국가로 정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전쟁의 어두운 기억을 잊지 못한 국민 사이에서 저항도 뿌리 깊었지만 오부치 정권은 밀어붙였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반복되다 보면 단순한 우연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배후에 화해와 내셔널리즘의 미묘한 메커니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위안부를 둘러싼 지난해 말 합의로 돌아오자. 오랜 세월에 걸쳐 한일 현안이었으나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의 사죄를 표명하고 정부 예산에서 10억 엔(약 107억 원)을 내놓기로 결정해 화해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다면 올해는 내셔널리즘이 나설 차례인지 모른다.

가령 이듬해의 법칙은 모르더라도 우익적인 심정과 현실적인 정치 감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아베 총리는 이 균형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 8월 낸 ‘전후 70년 아베 총리담화’도 화해와 민족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다 해도 헌법개정이라 하면 그 어려움은 보통이 아니다. 최대 초점은 군대 보유를 금지한 9조다. 천하의 아베 총리라도 이걸 금방 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 듯하다. 먼저 합의를 얻을 수 있는 부분부터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렇다 해도 국회의 중·참 양원에서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중의원에서는 여당이 3분의 2 의석을 가지므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승부처라고 총리는 벼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지난해 헌법 9조의 해석을 바꾸는 안보법제를 무리하게 통과시켜 국민의 반발을 산 직후이기도 하다. 그 분노를 불러일으키면 아베 총리의 노림수는 틀어지게 된다. 일본 국민의 균형감각이 어느 쪽으로 향할까. 올여름의 큰 볼거리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전 아사히신문 주필
#참의원선거#이듬해의 법칙#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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