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세계유산의 ‘빛과 그림자’ 서로 인정하는 도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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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극적 타협으로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직후
양국서 나온 “속았다”“굴욕” 비판
日, 강제노동 용어 피했지만 희생 강요 사실 분명히 인정
日 근대화의 밝은 부분 한국도 평가해주었으면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이번 주 월요일 캐나다에서 열린 여자축구 월드컵 결승전에 전 일본의 시선이 고정돼 있었는데 미국에 뜻밖의 대패를 당해 기운이 쑥 빠졌다.

하지만 그 전날 밤 독일에서 날아든 뉴스에는 일본 곳곳이 들끓었다. 한국과의 협의가 난항해 연장전으로 이어진 유네스코 회의에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나도 TV 자막을 보고 저도 모르게 “해냈다”고 환성을 질렀다.

오해는 마시길. 내가 그만큼 세계유산에 골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일 간의 골이 메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등재가 보류됐다면 양국 관계는 훨씬 더 바닥으로 떨어져 일본의 혐한 감정이 단번에 확산될 수 있다. 그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또 그런 결과로 끝났다면 오늘 나는 칼럼에 쓸 말을 못 찾았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그런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에 타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6월 22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즈음해 윤병세 외교장관이 처음 일본을 방문해 양측의 타협으로 해결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었다.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50주년 기념행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각각 참석해 오랜만에 우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다시 악화돼 파국에 이르면 양국 정상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된다. 모처럼 밝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양국 관계를 파괴했을 때의 위험은 서로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타협이 이뤄지고 보니 양국 내에서 이겼다, 아니 졌다, 속았다, 굴욕이다 등등 불협화음이 연출되고 있다. 그건 아니라는 기분이다.

타협의 핵심은 한국이 고집한 ‘강제 노동(forced labour)’이라는 말을 사용 않는 대신 일본이 아래의 표현을 유산 설명에 추가한다고 표명하는 데 있었다.

‘…많은 조선 출신자 등이 ‘그 의사에 반해 끌려와 혹독한 환경하에서 일하게 됐다’(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보통 생각하면, 이는 ‘강제 노동’에 대한 요약 설명이라고 말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일본이 강제 노동을 인정했다고 성과를 홍보하고 미디어도 환영했다. 일본 내에서는 “너무 양보했다”, “일본 외교의 실패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으로 일본 외교당국은 ‘강제 노동’이라는 용어를 피한 것을 중시한다. 징용공 보상을 둘러싼 재판과 정치문제에 파급되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계선상의 표현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일본 측이 거듭 “강제 노동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면 이번에는 한국에서 “이야기가 다르다”, “외교 실패다”라는 등의 반발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응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빛나게 보이는 일본 근대화의 그늘에 조선 민족이 강요당한 슬픈 희생과 공헌도 있었다는 것이다. 강제 노동이라는 용어는 피하면서도 그 사실을 일본 측이 인정했고 세계에도 알렸다는 점은 틀림없다.

세계유산에 등록된 시설에는 탄광섬이었던 나가사키(長崎) 현 하시마(端島·통칭 군함도)가 포함돼 있다. 폐허의 섬으로 알려진 이 명소를 나도 배로 보러 간 적이 있다.

여기에서 가혹한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섬에서 헤엄쳐 탈출한 끝에 원폭으로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런 비극을 그린 한수산 씨의 소설 ‘군함도’(원제 까마귀)를 읽었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이었다.

그런 어두운 면을 보려 하지 않는 일본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 씨는 소설 취재 때 일본인의 큰 협력을 얻은 것과 일본 독자가 감동적인 투서를 전해온 것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일본인이 결코 완전히 눈을 감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세계유산 등록을 계기로 근대화의 그늘을 아는 것이 일본에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도 한국은 일본 근대화의 밝은 부분을 평가해줬으면 한다. 모처럼의 타협으로 던져진 숙제는 서로의 그런 도량이 아닐까.

참, 잊을 뻔했는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록을 나도 진심으로 축하한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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