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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송상용]과학자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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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송상용]과학자 세종대왕

입력 2009-09-17 02:52수정 2009-10-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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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금년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할 과학자로 세종을 선정했고 교육과학기술부는 9월 1일 이를 공고했다. 한 달 안에 이의가 없으면 선정은 확정된다. 세종을 훌륭한 과학자로 뽑은 것은 놀라운 소식일 수 있다. 2003년 창설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는 작년까지 25명을 모셨다. 그 가운데 10명이 선현으로 분류된다. 이순지 이천 장영실 등 신하가 먼저 올랐는데 뒤늦게 임금을 올리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는 의문도 나왔다. 순서는 뒤바뀌었더라도 세종을 뺄 수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세종이 다스린 15세기 전반 조선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세종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냈지만 특히 과학기술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시대 유럽은 르네상스가 한창이었으나 근대과학을 낳은 과학혁명은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세종은 웅대한 과학기술정책을 세우고 온 나라의 인재를 모아 과제를 맡겨 연구개발하게 했다. 그는 과학기술정책을 만들어 추진한 걸출한 지도자로 평가 받거니와 그 자신이 손색없는 과학자였다.

세종 대 과학에서 가장 볼 만한 성과는 천문학과 기상학에서 나왔다. 세종은 중국의 역법을 연구하게 해 10년 만에 칠정산을 편찬했는데 내편은 중국의 수시력을 서울의 위도에 따라 만들었고 외편은 중국에 도입된 회회(이슬람)력을 바로잡고 더욱 발전시켰다. 또 여러 가지 천문관측기구(간의, 혼의, 일구)와 시간측정기구(자격루, 옥루)를 만들었다. 조선은 카스텔리보다 200년 앞서 측우기를 만들어 방대한 관측 자료를 남겼다.

고려 때 최무선이 도입한 화기기술은 세종 때 큰 발전을 보여 천자총통을 만듦으로써 중국기술의 모방을 벗어났다. 중국 농서 의존에서 탈피해 조선 독자의 농업기술을 체계화하는 노력은 ‘농사직설’로 결실을 보았다. 이 책에서 농기구 이름을 우리말 발음으로 썼는데 호미나 가래 같은 조선의 독특한 농구가 나온다.

지리학에서는 세종 대에 완성된 신찬팔도지리지와 팔도도의 편찬을 들 수 있다. 지도의 보완과 새 지도 제작 사업은 계속되어 세조 대에 끝난 동국지도로 결산을 보았다. 세종의 업적 가운데 국산 약재, 곧 향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세종은 향약채취월령의 편찬을 명했고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했다. 고유의 약재와 벽촌의 경험방을 정리하고 의학의 이론체계와 연결한 책이다. 세종은 또 동아시아의학을 총정리하는 야심 찬 계획에 착수했다. 의학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의방유취’의 편찬은 3년 만에 완성했으나 교정과 인쇄에 22년이 걸려 성종 대에야 간행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1질이 일본에 남아 있을 뿐이다.

세종의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글(훈민정음)의 창제다. 한글 발명의 의의는 긴 말이 필요 없거니와 오늘날 한글의 가치는 인문학뿐 아니라 수학 전자공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세종은 이 하나만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있다.

국내 과학사학자들은 세종 대가 한국과학의 황금기였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과학사 연구의 선구자 전상운 교수는 세종 대 과학이 15세기 전반의 서유럽은 물론 아랍과 중국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고 격찬한다. 박성래 교수도 일본보다 2세기 앞서 서울에 맞는 역법을 완성한 세종 대 조선의 높은 천문학 수준에 주목한다. 15세기 한국과학의 빛나는 성공의 배경은 무엇일까? 고려 때 원을 거쳐 들어와 축적된 아랍과학이 세종이라는 빼어난 지도자의 탁월한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개화한 것이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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