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치검사’ 최재경, 司正 아닌 民情을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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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도리”라며 사표 내고 “상황이 상황”이라며 청와대 출근
MB정부 때 찍힌 ‘정치검사’ ‘최순실 게이트’에 영향 미쳐… 박근혜 정부서 영화 누릴 텐가
“29일 검찰 조사 받으시라”… 직언 못할 거면 출근도 말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최재경 민정수석은 4년 전에도 사표를 쓴 적이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2012년 말, 현직 고검장 뇌물수수 등 내부 비리로 곤경에 처한 한상대 검찰총장이 반전(反轉) 카드로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었던 자신의 감찰을 지시했을 때다.

  ‘제일 중요한 건 첫째가 조직, 둘째가 상관’이라고 믿는 그는 집단 항명을 주도했다. 한 총장이 대검 중수부 해체라는, 조직을 해치는 일을 검찰개혁안으로 발표하게 놔둘 수 없다며 거꾸로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린 것이다. 최악의 검란(檢亂)이었다. 한 총장은 항복하고 11월 30일 개혁안 발표 없이 사퇴를 고했다. 최재경도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辭意)를 표했다.

 그런데 그는 남았다.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는 이유다. 그 무렵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저는 제 자신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거나 검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엄숙히 약속한다”며 중수부 폐지와 특별감찰관제 등 검찰 개혁 공약을 발표한 건 웃픈(웃기고도 슬픈) 코미디다.

 그 최재경이 23일 다시 “사의를 표하는 게 공직자로서의 도리”라고 밝혔다. 중수부도 해체됐고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비선 실세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들여다보다 쫓겨난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 임명장을 받은 지 닷새 만이다. 그러고는 사표가 반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요일인 어제도 출근했다니 사표가 장난이었던 모양이다.

 지난주 최재경이 지인에게 “내가 사표를 내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동료·후배 검사의 수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기에 나는 드디어 영화에서나 보던 검사가 나타났다고 만세를 불렀다. 대선 공약과 정반대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한 대통령이 현재의 대통령이다. 검사 출신 최재경을 불러들인 이유가 또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도 평소 우병우 전 민정수석 때문에 검찰이 망가진다고 여겼다는 최재경은 다를 줄 알았다. 가장 똑똑한 검찰 내에서도 위아래로 신망이 두터웠다니 트로이의 목마처럼 청와대로 들어가선 혼군(昏君)에게 법치주의를 알려주고 사정 라인 곳곳의 ‘우병우 라인’을 걷어내는 진정한 검사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4년 전에도 그랬던 걸 보면 사표 내고도 다시 나오는 건 최재경의 버릇인 듯하다. 대면조사 받으라는 민정수석의 조언 대신 개인 변호인 말을 따르는 대통령이라면 최재경이 청와대에서 할 일은 없다. 그런데도 “상황이 상황”이라며 꾸역꾸역 출근하는 것을 보니 후임자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출근할 게 뻔하다. 4년 전 그가 사의를 밝힌 며칠 뒤 야당에서 “BBK (수사를 무혐의로 털어준) 정치검찰 행동대장, 검찰총장과 이전투구로 국민적 검찰개혁 요구에 정면으로 반발한 중수부장이 사표가 반려됐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개탄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반복된 셈이다.

 최재경이 조직을 해치는 검찰총장은 안 된다며 검찰개혁에 반대했듯이, 말끝마다 조직을 되뇌는 집단은 조폭과 검찰밖에 없다. 국가와 검찰조직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조직을 우선하는 것이 검찰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2011년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가 특검에서 뒤집힐 만큼 정치검사로 유명했던 최재경이 그때 그렇게 검찰개혁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병우 가이드라인’에 절절 매는 검찰은 안 나왔을지 모른다.

 MB 때 잘나갔던 최재경도 2014년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을 산 채로 체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났다. 두 달 전 “검찰은 추관(秋官), 즉 가을의 관청이다…검찰이 가을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서는 검찰 스스로 서릿발 같은 자기 정화가 필요하다”고 쓴 글을 기억한다면, 지금이 정치검사라는 낙인을 지우고 진정한 공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사정기관을 주무르는 사정(司正)은 더는 안 된다. 국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알리는 민정(民情)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독대를 피한다면 관저 앞에서 소리라도 쳐서 민심을 알리고, 검찰이 정한 마지막 조사날짜인 29일 대통령이 대면조사를 받도록 하기 바란다. 그래도 대통령이 듣지 않는다면, 청와대 출근은 끝내야 한다. 검사 출신이 그만한 기세도 없이 어떻게 ‘퇴폐한 기강’을 떨쳐 일으킨단 말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최재경#민정수석#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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