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내시 여당’의 반역, 누가 할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7일 2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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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표 되는 게 개혁”…비박 ‘혁신 단일후보’ 주호영
“내 지역구엔 사드 안 된다”
국익과 안보보다 표밭 챙기는 여당대표, 국제망신 아닌가
차라리 대통령의 내시 이정현
계파청산 공언한 친박후보들이 비박보다 나은 비극 어쩌나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냉장고 문을 불쑥 열고는, 내가 뭘 꺼내러 왔더라 할 때가 있다. 나야 갱년기 증상이라고 해도 요즘 새누리당을 보면 자기네들이 왜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전당대회를 열게 됐는지를 잊은 것 같다.

새누리당은 4·13총선에서 참담하게 패해 새 당 대표를 뽑는 거다. 친박(친박근혜) 세력은 한사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지만 여당 총선백서는 ‘새누리 왜 망했나 우리가 알려 주마’ 부분에서 계파 갈등을 패배 이유로 맨 앞에 놨다. 그것도 빨간 글씨로 ‘진박, 친박, 비박, 원박, 뭔 박이 이렇게나 많아… 흥부전도 아니고’라고 명시해 친박 패권주의가 가장 큰 문제임을 밝혔다.

비박(비박근혜)계 주호영 ‘혁신 단일 후보’도 어제 “친박 패권주의 청산 없이는 그 어떤 혁신도 공염불에 불과하며 정권 재창출의 희망도 살려낼 수 없다”고 부르짖었다. 그럼 그가 당 대표 되면 흥부전 결말처럼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되는 건가?

비박계로선 그럴지 모른다. 친박의 패권질을 끝장내면서 내년 대선 후보 경선까지 제대로만 관리해주는 비박당 대표가 제일 고마울 거다. 경선 룰이 마구 조정돼 친박에서 원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경선 없이 대선 후보로 안착하고, 그리하여 친반(친반기문)이 된 친박이 천년만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데 비박은 계속 찬밥신세가 되는 게 그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새누리당이 나의 냉장고는 아니지만 여기서 잠깐 냉장고 문을 놓고, 내가 뭘 꺼내러 왔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시원한 음료수이지 ‘웬 떡’이 아니었다. 갈증만 달랜다면 꼭 콜라가 아니라 물이어도 상관없다.

요컨대 친박 패권주의가 문제면 비박 패권주의도 문제라는 얘기다. 더 중요한 건 친박 패권 청산 정도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는 보수 정당이 되도록 살가죽을 벗기는 일이다. 그 개혁 방향에 따라 국정기조도 달라지면서 ‘내시’와 여왕 같은 당청관계도 바꿔나가야 한다. 주호영이 합리적이어서 친박-비박 두루 거부감이 적은 인물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걸 해낼 것 같지가 않다. 왜 지금 당 대표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공천 희생자인 제가 되는 게 가장 극명하게 새누리당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수준이 답답해서다. 한마디로 ‘복수’하려고 나왔다는 것 아닌가.

더구나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성주 배치에 반대한 TK(대구경북)다. 반대가 아니라 정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나중에 말을 바꿨지만 “내 지역구에 불만 많다”고 대통령한테 민원이나 하는 얌체는 당당한 여당 대표가 될 수 없다. 야당이, 중국이 사드 반대할 때 뭐라고 맞설 텐가 말이다. 국가보다 제 표밭이 더 중하다는 치사한 속내를 드러낸 사람이 여당 대표가 된다면 국제 망신이다.

그럼에도 비박 단일 후보가 주호영이어서 당 대표로 뽑힌다면 이번엔 웰빙끼리 돌아가며 해먹자는 의미밖에 안 된다. 차라리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며 “새누리당을 혁명해서 뒤바꿔 보겠다”는 친박 이정현이 당 대표 되는 게 새누리당에는 나을 것 같다.

그가 “미국에서 흑인이 인종 차별을 넘어 대통령이 된 것처럼 호남 출신 당 대표가 나오는 것이 지역주의의 벽을 넘는 일”이라고 말했듯이, 친박-비박 계파 깨는 일이 지역주의 깨는 것만큼 어렵진 않을 것이다. 당선되는 순간 기득권에 빠져드는 새누리당, 국민이 없는 정치를 바꾸는 ‘제2의 민주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발언이 설령 레토릭이라 해도 이 정도 비전은 내놔야 예의다.

물론 이정현이 당 대표가 된다면 ‘도로 친박당’을 청와대의 혀처럼 끌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2008년 “한나라당이 대통령당(黨) 되지 않고 친박이라는 자정(自淨) 장치가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던 인터뷰를 기억한다면, 그리하여 지금 같은 내시 정당을 확 바꾸는 ‘반역’을 감행한다면 그게 되레 충성이고 애국일 터다.

아니면 친박이기는 해도 “계파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은 아니다”라는 이주영, “강성 친박 10명은 2선으로 물러나게 하겠다”는 한선교도 낫겠다 싶다. 적어도 이들은 대놓고 “내 지역구엔 사드 반대”를 외치진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친박 패권 비판하며 저희들 멋대로 단일화해버린 비박 패권주의를 용서할 수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새누리당#친박#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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