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허버드]워싱턴에서 보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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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합의문, 구체성 빈약… ‘핵 위협 없다’ 예단하긴 어려워
북미 정상회담 성과는 직접 대화 시작했다는 것
회담 동력 어느 때보다 강해… 한미공조는 지속돼야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대부분의 미국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전례 없는 정상회담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전쟁 가능성을 줄인 중요한 한 걸음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한다. 6개월 전만 해도 전쟁 임박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한반도에서의 영구적인 평화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도 이 같은 긍정적인 상황 전환에 대해 크게 안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돌아와 두 정상의 극적인 만남으로 인해 북한의 핵위협이 진정으로 종결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안도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점으로 인해 한계를 보인다. 싱가포르에서 체결된 양국 간의 공동합의문은 평화와 친선을 향한 원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으며 북한의 체제 보장을 반대급부로 하는 비핵화에 대한 전반적인 의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예상외로 빈약했다. 사실 싱가포르 합의문은 구체적인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과거에 체결했던 합의문보다 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합의문은 양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체제 보장’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

어쩌면 정상회담의 가장 가시적인 결과물은 양국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밝힌 열망을 구체적인 의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대화를 시작한다는 사실 자체였을지 모른다. 협상 초반에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이와 관련된 시설 몇 군데를 폐쇄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현존하는 핵무기와 생산시설, 핵물질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이 이 같은 것들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단계를 밟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

완전하고 검증이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핵프로그램의 해체는 여전히 미국의 핵심 목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협상의 책임자로서 북한이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일 것인지 시험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에 의존하는 것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나라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더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해낼 수 있을까? 그가 그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김일성)보다 공공외교에 더 능숙함을 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김정은은 ‘핵 억지력’을 얻은 상태에서 경제발전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고도 밝혔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핵무기를 버리고 국제적인 정치·경제 협력의 길을 택하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렸는지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물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 당사국들의 지도자들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협상은 전례 없는 수준의 동력을 갖고 출발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현직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의 첫 만남이 그 시작점을 남북 정상회담에 두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생산적인 남북 간의 소통은 이미 진행 중이고, 이는 북-미 협상과 발을 맞추며 지속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이끌어왔다. 그는 김정은과의 소통에 개방적이었고, 평창 겨울올림픽이라는 기회를 잡아 냉기류를 끊어냈다. 문 대통령은 물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자 하지만 비핵화와 압박 정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도 가깝게 지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한반도의 평화를 모두가 희망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변화의 순간이 다가왔는지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근본적인 수준의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소통의 과정은 핵위협을 없애고 분쟁을 평화로 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기다렸던 그 순간을 잡기 위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북미 정상회담#트럼프#김정은#핵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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