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범석]‘미래를 지향하는’ 일본의 감정적 구태(舊態)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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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도쿄 특파원
김범석 도쿄 특파원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이 한일 문화 교류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우리도 유식자회의(일한 문화·인적 교류 추진을 향한 유식자 모임)를 만들었습니다. 향후 한일 관계의 방향에 대해 한번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일 일본 외무성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대법원의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등으로 일본의 항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노 외상의 발언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 가능성이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이날 몇몇 일본 기자는 회견 후 기자에게 “한국에서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의 회담 일정을 논의 중이냐”고 물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26일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고노 외상은 자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 장관의 일본 방문과 관련해 “정확히 답을 가져오지 않는 한 일본에 오셔도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측이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만나지도 않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한일 외교무대에서 고노 외상의 ‘감정’이 드러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렀을 때는 악수도 청하지 않았다. 이 대사에게 모두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고 갑자기 비공개 면담으로 바꿔 취재진을 퇴장시킨 것도 사전에 예정되지 않았던 고노 외상의 ‘즉석 조치’였다는 것이 외무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21일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 때는 외무성을 방문한 이 대사를 고노 외상이 아닌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사무차관이 만났다. 외교 소식통들은 “아키바 사무차관도 주일 한국대사의 카운터파트이긴 하지만, 고노 외상이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점차 고조되는 ‘대한(對韓) 감정 외교’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자민당 내 정무조사회인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 위원장인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전 외상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한국 의원들의 독도 방문 등 최근 사안에 대해 “(한국은) 국가의 몸(형태)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막말을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했다. 한 우익 매체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에 대해 “한국의 등을 밀며 부추기고 있는 일본인”이라며 “세계 질서를 파괴하는 속임수 같은 위험함을 느낀다”고 맹비난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최근 경남 합천군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에서 원폭 피해자들에게 사죄했고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 관련 포럼 행사에도 참가한 바 있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어두운 한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진상 규명을 하지 않았던 일본은 이번에도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청한다”며 떠넘기는 자세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원한다면서도 한국에 대한 엄포와 비난을 멈추지 않는 과거의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29일에는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법원 상고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번엔 일본의 미래지향적 외교를 볼 수 있을까.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고노 다로#강제징용#미쓰비시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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