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범석]스카이트리가 흔들린다면… 요동치는 ‘메이드 인 저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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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도쿄 특파원
김범석 도쿄 특파원
한 달 전 홋카이도에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삿포로 총영사관 인근 대피소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중에는 모처럼 부부끼리 여행을 왔다는 노영희 씨(71)와 신광연 씨(66·여)도 있었다. 이들은 “새벽에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방이 흔들렸는데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그보다 석 달 전에는 오사카에서 진도 6약(弱)의 지진이 일어났다. 교민, 관광객 등 한국인이 어느 곳보다 많은 지역이라 한국인의 안전에 관심이 모아졌다. 수소문 끝에 한 한인 민박집 사장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아침에 건물이 흔들려 놀랐다”면서도 “별문제 없다”고 말했다.

6월 오사카 지진과 9월 홋카이도 지진 모두 해당 지역에서 진도 기준으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럼에도 건물이 심하게 무너지거나 도심부에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일이 없었다. 강진의 공포를 안고 사는 만큼 일본은 건물 내진 설계나 지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5일 내진 장치 등 산업 부품들을 제조하는 ‘KYB’와 자회사 ‘가야바시스템머시너리’가 건물의 내진을 담당하는 ‘댐퍼’라는 장치를 만들면서 검사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일본 국토교통성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두 회사가 만든 댐퍼는 건물 건설 과정에서 지하나 벽에 설치하는 것으로 지진 발생 시 에너지를 흡수해 건물이 덜 흔들리도록 하는 장치다. 국토교통성 조사에서 발각된 것은 이 두 회사가 만든 댐퍼가 성능 기준에 미달됐음에도 적합한 것처럼 데이터를 조작해 판매한 정황이다.

문제는 이 장치들이 2000년 3월부터 현재까지 18년간 일본의 고층 아파트나 병원 관공서 등에 986개가 판매됐는데 상당수가 도쿄(250개), 오사카(107개) 등 일본 대표 도시의 건물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중에는 2011년 개장한 도쿄 상징물 중 하나인 ‘도쿄스카이트리’나 상업시설, 미술관 등이 있는 ‘롯폰기힐스’ 건물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곳 모두 진상 파악에 나섰다. 무료 전망대가 있어 한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도쿄도청 역시 두 회사의 댐퍼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직원의 폭로로 드러난 부정에 경영진은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고 “데이터 조작으로 제작된 제품을 전부 교체하겠다”며 사과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매우 유감이다. 국토교통성에서 재발 방지 대응을 지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수에 민감한 일본 정부로선 이를 단순한 문제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안 그래도 지진, 태풍 등의 영향으로 9월 일본 방문 관광객 수가 5년 8개월 만에 ‘마이너스’가 됐는데 내진 데이터 조작 사건이 겹치면서 올해 일본 정부가 세운 ‘3000만 명 돌파’ 목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고베철강’, ‘미쓰비시그룹’ 계열사 등의 잇단 품질 데이터 조작에 내진 부품 데이터 조작 사건까지. 일본 제조업의 권위는 연일 추락하고 있다. 지진 태풍보다 ‘메이드 인 저팬’이 더 무서운 게 될까 우려된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 지진#가야바시스템머시너리#고베철강#미쓰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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