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쇠퇴해 가는 기업가정신… 존중과 격려로 북돋아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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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우리 역사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원칙과 전통 아래 기업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는 데 인색했다. 안성유기, 전주한지, 안동포 등 지역별로 유명한 산업은 있어도 그 산업을 이끈 기업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최근 출간한 ‘기업가 문익점’의 한 구절이다. 다독가로 잘 알려진 윤 회장이 목화라는 상품 가치를 알아보고 이 땅에 들여온 문익점을 ‘지식인 창업가’로 조명한 책을 직접 쓴 이유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도전과 혁신이 필요한 지금, 문익점의 안목과 실천정신이 기업가가 가져야 할 정신이란 생각이 들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199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가장 왕성한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1950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40여 년 만에 괄목할 만한 산업 분야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을 높은 기업가정신으로 본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업가의 주요 임무이자 정신”이라고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새로운 사업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하고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면서 기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말한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 대다수가 반대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것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조선소 건설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일갈한 “이봐, 해보기나 했어?”는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구는 데 기여한 창업 1세대의 충만한 기업가정신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한때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2000년대 들어 계속 약화되는 추세다. 암웨이가 올해 3월 발간한 글로벌기업가정신보고서(AGER)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AESI)는 39점으로 전년보다 9점이나 하락했다. 44개국 조사 대상국 중 33위에 그쳤다.

많은 전문가는 기업가들의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하는 요인으로 반(反)기업 정서, 노사 갈등, 기업 규제 등을 꼽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호감지수는 2016년보다 다소 오르긴 했지만 55.8점(100점 만점)에 머무르고 있다.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불게 하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가의 역할을 좀 더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 같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3월 열린 스타트업 포럼 행사에서 “한국에서 기업가들이 너무 존중을 못 받는다. 사회가 기업가 내지 창업자를 존중하지 않으면 스타트업 생태계나 정책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려면 무엇보다도 기업가들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못한다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잘하라고 등 좀 두드려주면 누구보다 신나게 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국민의 반기업 정서에는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기업인들의 비윤리적 행동과 몹쓸 갑질이 영향을 줬다. 하지만 이보다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 가며 이윤과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를 발전시킨 기업이 훨씬 더 많다. 대다수 기업인에 대한 격려와 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기업가정신#조지프 슘페터#반기업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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