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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그 정도 ‘No’는 ‘No’가 아니다… 안희정 무죄에 담긴 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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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그 정도 ‘No’는 ‘No’가 아니다… 안희정 무죄에 담긴 통념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입력 2018-08-21 03:00수정 2018-08-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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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 전문을 보면 피해자 김지은 씨(33) 주장에 대한 판사의 불신이 엿보인다.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을 검증하는 데 전체 114쪽 중 80쪽을 할애했다. 판결문의 약 70% 분량이다. 김 씨의 진술 요지 뒤에는 ‘한편 같은 증거에 비추어 보면 아래와 같은 사정들도 인정된다’는 표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아래로 김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사유가 상세히 따라붙는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성관계 당시 범죄임을 알았는지 등은 따로 살피지 않았다. 김 씨의 피해 주장 자체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피고인 안희정’의 재판에서 그의 ‘가해자다움’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판단에 가로막혀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외로우니 안아 달라” “나를 안게” “씻고 오라” “침대로 오라”….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 이런 말을 했다고 판결문에 나와 있다. 말만 봐서는 폭력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네 차례 성관계를 요구하면서 인사 혜택이나 불이익을 언급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안 전 지사는 성관계를 갖고 나면 김 씨에게 ‘미안하다’ ‘잊어라’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한창이던 올 2월에는 김 씨를 불러 “너한테 했던 것들이 상처가 된 걸 알았다. 괜찮니”라고 물었다.

그는 이날도 김 씨와 성관계를 한 뒤 ‘내 자신이 참 무책임하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밀려왔어’ ‘나 때문에 상처받고 실망하고 그러지 말길’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안 전 지사는 김 씨의 폭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바로잡기도 했다. 김 씨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안 전 지사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정황이다.

하지만 판결의 초점은 안 전 지사의 상황 인식이 아닌 ‘강압으로 느꼈다’는 김 씨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성관계 요구를 받은 김 씨가 고개를 숙이고 “아니요.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라고 중얼거린 행위는 충분한 거절이 아니라고 봤다. 안 전 지사가 호텔 방으로 담배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도 성관계 요구 가능성을 예상했다면 객실 앞에 담배를 갖다놓을 수도 있었는데 충분히 회피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오히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김 씨처럼 고학력에 정상적인 성인 여성이라면 실체가 불분명한 위력에 굴복할 정도로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논리다. 미성년이거나 장애인이 아닌 여성이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에 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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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했다지만 충분한 ‘No’가 아니었다는 시각에는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제쳐둘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첫 여성 수행비서로서 보좌 업무를 잘해내고 싶은 자아실현 욕구, 직장을 유지하면서 이직에 대비해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는 신분 안정 욕구는 성적 자기결정권 못지않은 기본권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보스로부터 “나를 안으라”는 요구를 받은 여비서는 거절의 대가로 잃게 될 다른 기본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정중한 언어로 포장돼 있어도 은밀한 요구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마음에서 가치관이 충돌할 때 나름의 방식으로 머뭇거린다. 재판부는 ‘여성에게 정조는 생명과 같다’는 통념이 전근대적이라고 지적했지만 위력 앞에 선 여성의 머뭇거림을 바라보는 인식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안희정#재판부#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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