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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용석]중국의 반도체 굴기 앞 ‘삼송’한 한국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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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용석]중국의 반도체 굴기 앞 ‘삼송’한 한국 반도체

김용석 산업1부 차장 입력 2018-06-08 03:00수정 2018-06-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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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1부 차장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탐지를 위해 인공지능(AI)을 동원한다. 위성사진 판독을 기계에 맡기면 인간을 초월하는 정확성과 신속성을 발휘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국가 간 힘 대결도 판도가 바뀌고 있다. 핵심 경쟁 요소는 AI와 빅데이터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에서 AI 인재와 반도체 기술 쟁탈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67조 원)을 투자하는 것도 유심히 볼 수밖에 없다. 국영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가 단순히 산업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월하겠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은 ‘FAANG 시대’ 도래의 결과다. 미국 페이스북(F), 아마존(A), 애플(A), 넷플릭스(N), 구글(G)을 뜻하는 FAANG는 업종이 각각 다르지만 경쟁력 원천은 비슷하다. 데이터 센터에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데이터를 저장한다. 컴퓨팅 기술로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한다.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석유’로 불린다. FAANG에 유일하게 도전장을 낸 세력이 중국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다. 겉보기엔 FAANG와 BAT의 대결이지만 밑바닥엔 패권 국가의 힘겨루기가 깔려 있다. 중국 최대 아킬레스건이 메모리 반도체다. 중국은 원유보다 반도체 수입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패권 경쟁의 걸림돌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반드시 달성하려 할 것이다. 시장을 망가뜨려도 상관없다. 철강과 조선 시장도 같은 논리로 접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운명이 합리적 시장논리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순진함은 금물이다.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는 “국가 안보의 원동력인 반도체 시장이 자유경쟁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가정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을 담합 혐의로 조사하며 압박하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조사에 공정성을 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패권 경쟁을 하겠다는데 ‘공정’이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바레인 왕족 기업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석유 자원이 경쟁력을 잃을 미래에 대비해 첨단기술 확보가 절실하다고 했다. 미국 셰일가스 개발, 유럽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석유 자원의 전략적 가치가 폭락하는 미래가 그의 눈에 펼쳐졌을 것이다. SK하이닉스 이사회 멤버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남들은 반도체가 잘 팔린다며 부러워하지만 반도체를 누가 사가는지를 보면 속이 터진다”고 했다. 박 사장의 눈엔 FAANG와 BAT의 주도권 대결에 밀리는 우리 정보기술(IT) 산업의 현실이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정부 눈엔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정부는 반도체 분야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줄였다. 잘나가는 대기업을 왜 세금으로 돕느냐는 눈총 때문이다. 사업장 안전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반도체는 선진국이 버린 ‘위험 산업’일 뿐”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삼송하다(삼성이라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기가 떨어졌다.

‘반도체 초격차’를 지키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 전략적 레버리지가 약해지면서 다른 산업 분야 생존 전략에도 영향이 있을 거라 본다. 반도체 위기는 한국 제조업 붕괴의 출발점이 아니라 종착점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 중 하나가 내부 정치 논리로만 다뤄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안만 바라보고 밖을 내다보지 않는 국가에 미래는 주어지지 않는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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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반도체 굴기#faang 시대#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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