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검사님의 ‘내로남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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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검사는 조그만 꼬투리만 걸려도 무조건 구속하는 게 말이 되냐.”

지난주 서울고검 감찰부가 현직 검사 2명을 수사자료 유출과 무단파기 혐의로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검찰청 곳곳에서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지난해 가을 이후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수사 대상이 된 전·현직 검찰 간부는 10여 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직무상 비위로 감찰 조사를 받던 평검사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그간 쌓여온 검찰 수뇌부에 대한 서운함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이 공판을 담당한 사건의 수사기록을 고소인인 최인호 변호사에게 건네준 혐의를 받고 있는 추모 검사(36)에 대해서는 특히 동정 여론이 높다. 2014년 당시 서울서부지검 초임 검사였던 추 검사는 직전에 부장으로 모셨던 A 지청장의 부탁을 받고 최 변호사에게 수사기록을 넘겨줬다고 한다. 일선 검찰청의 한 검사는 기자에게 “청탁을 한 A 지청장만 구속하면 될 일 아니냐. 선배 부탁을 받고 철없이 한 일로 어린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치는 건 심했다”고 말했다. ‘감찰팀 수사가 거칠다’거나 ‘수사 착수 배경에 음모가 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공개적으로 동료의 구명에 나선 검사도 있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25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 검사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모 검사(46)를 위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최 검사는 2016년 서울남부지검에 근무할 때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을 함께 내사하던 박모 수사관(47·구속 기소)이 유출한 조서를 파기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 검사는 탄원서에 “공모 범의를 극구 부인하며 혐의 유무를 다투고 그간 성실히 조사에 응해온 최 검사님이 불구속 수사의 대원칙에 따라 불구속 상태에서 최대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적었다.

법원은 일단 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긴급체포의 적법성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그렇다면 두 검사는 진짜로 억울한 수사를 받고 있는 걸까. 추 검사가 유출한 자료는 고소인 최 변호사의 법적 분쟁 상대방이 구치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명단(접견부)과 대화 내용을 기록한 녹취록이라고 한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개인정보다. 구치소가 검찰에 제공할 때도 암호를 건 파일로 제공할 정도다. 그런 자료를 옛 상사의 부탁으로 유출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헌법과 법률이 검사에게 큰 권한을 주고 철저한 신분 보장을 해준 이유는 그런 요구를 거절하라는 뜻이다.

추 검사가 어린 검사여서 책임이 작다는 것도 터무니없다. 추 검사와 A 지청장은 여전히 현직이고 같은 검찰 조직에 속해 있다. 그런 관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입을 맞추고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다’며 구속하는 게 수사 관행 아니었나.

최 검사를 두둔한 임 검사의 언행도 매우 부적절하다. 그는 글에서 “최 검사님의 인품과 그간 삶의 행적에 비추어, 막대한 이익이 주어지더라도 수사관의 직무상 범죄에 가담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아무런 이익이 없음에도 수사관의 직무상 범죄를 묵인할 리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훌륭한 검사라고 죄를 짓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수사 대상이 누구건 시시비비를 밝히는 게 검사의 일이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서울고검 감찰부#현직 검사 긴급체포#최인호#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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