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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마을버스로 출근한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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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마을버스로 출근한 감사원장

정원수 정치부 차장 입력 2018-02-12 03:00수정 2018-02-1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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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정치부 차장
미세먼지가 최악이던 지난달 중순 아침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앞. 중절모와 마스크를 쓴 60대 노신사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서울 북촌로 중앙중학교 근처 정류장에 내려 그가 걸어간 곳은 감사원 본관 2층의 감사원장 집무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서울시가 차량 2부제를 시행하자 관용차 대신 지하철과 마을버스로 출근했다. 같은 버스에 탄 감사원 직원들도 눈치 못 챘다고 한다.

지난달 2일 임기를 시작한 최재형 감사원장 얘기다. 판사 출신인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 ‘미담 제조기’로 불렸다. 두 아이를 입양한 게 뒤늦게 화제가 됐지만 그는 사석에서 늘 “민법에는 혼인과 입양으로 가족을 구성하게 되어 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답한다. 6·25전쟁 때 해전에 참전한 아버지, 해군 복무 중인 아들을 거론하며 의원들이 “병역 명문가 아니냐”고 하자 그는 “장조카가 척추 이상으로 복무를 안 해서 그 표현은 좀 어렵지 않나”라고 했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졌다”고 뿌듯해하는 판사들도 개인적으로 여럿 만났다.

최 원장은 신년 인사를 겸한 감사원 직원 특강 때 “누구든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일하자” “저뿐만 아니라 말단 직원들까지 함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자” 등 기본과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소박한 된장국에 밥 한 그릇 정갈하게 먹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감사원에선 그를 ‘살아 있는 법과 원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행동으로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차량 2부제에 대비해 홀짝 번호 두 대였던 관용차를 한 대로 줄이라고 지시하고, 개인 약속이 있으면 콜택시로 퇴근하는 에피소드들이 최근 관가와 정치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최 원장이 넘지 못하는 난관이 하나 있다. 개헌 시 감사원의 지위와 소속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을 국회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감사원의 핵심 가치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라고 답했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감사원은 헌법기관이다. 헌법에 감사원 관련 조항이 총 130조 중 4개가 있다. 그런데 순서가 헌법에서 대통령,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각부에 이은 정부 분야의 맨 끝이다. 형식은 대통령 산하, 내용은 독립기관이라는 모순이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개헌할 때 처음 들어갔다. 1963년 이후 4차례 개헌 때는 감사원장 궐위 관련 대목이 삭제된 것을 빼고 나머지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아래 설계된 미국은 이와 좀 다르다. 감사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회계감사원(GAO)은 의회 산하기관 중 조직과 예산이 가장 방대하다. 국민 세금 낭비를 막는 ‘일하는 국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여당은 얼마 전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는 대안을 내놨다. 대통령 권한 축소에 관심이 큰 야당도 호응할 수 있다. 국회 권한을 찾고, 감사원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국회가 모처럼 앞장서 해결할 기회다.

“감사원의 독립을 확고히 지켜 나가겠다.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부당한 간섭에도 흔들림 없이 독립하여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최 감사원장이 다짐한 제1원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입양 때도 그랬고, 감사원장직을 수락하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기자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한마디뿐이다. 아멘.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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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서울시 차량 2부제#최재형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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