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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Me too”란 말도 못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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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Me too”란 말도 못 하는 사람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입력 2018-02-08 03:00수정 2018-0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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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끝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 최신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업데이트된다. 미국에선 영화 ‘킬빌’로 유명한 여배우 우마 서먼의 폭로가 추가됐다. 그는 뉴욕타임스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나도 당했다”며 “총알도 아까운 인간”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용감한 여검사들의 연쇄 폭로를 계기로 최영미 시인의 ‘미투’ 시(詩)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출간된 계간지 황해문화에 게재한 시 ‘괴물’에서 ‘100권의 시집을 낸 노털상 후보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지도록’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페미니즘에 관한 시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한국 문단의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쓰지 않으면 작가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국적과 민관(民官),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없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아침 비행을 앞두고, 여직원 골프대회 뒤풀이 도중에 그랬다니 밤낮의 구분도 없다. 장소? 가리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곡소리 나는 상가에서 그런 일을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런데 피해자의 사회경제적인 ‘계급’은 가리는 걸까. 미투를 외치는 이들은 유명인이거나 검사 같은 ‘센 언니’, 혹은 번듯한 대기업 직원들이다. 그들의 일터에 유독 덜떨어진 늑대들이 많아서?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통계상 성범죄 발생 건수가 높은 건 그만큼 피해자 구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범죄 사실이 더 많이 드러나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조직에나 성범죄는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일어나는 범죄라면 유독 영세 사업장에서 미투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건 위험 신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여성 근로자(373만 명) 가운데 30인 미만 규모의 회사에 다니는 여성이 172만 명(46.1%)으로 절반에 가깝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15.5%(57만7000명)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미투’라 외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일터엔 유명무실하다는 성범죄 피해구제 시스템조차 없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고, 호소했어도 무지막지한 뒷감당을 걱정해야 한다. 달려와 도와줄 변호사 친구도 없다. 모바일 앱이나 ‘○○단체’ 또는 ‘○○계’로 묶여 연대할 수 없는 고립된 약자들이다.

이들의 가해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무원, 해마다 ‘노털상 후보’에 오르는 문인, 대형 로펌의 대표처럼 잃을 게 많은 갑보다는 매니저, 지배인, 작업반장이라는 평범한 직함으로 불리는, 을에게 갑질하는 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주목을 끌지 못한다. 가해자가 카지노 재벌이든 프랜차이즈 점장이든 성범죄는 성범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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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캠페인의 확산 속도에 놀란 정부와 국회가 대책위원회를 만드느라 바쁘다. 다들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 성폭력 문제 근절, 성범죄 없는 일터 만들기를 약속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중고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이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으니 청와대의 공식 답변도 곧 나올 것이다. 어떤 대책을 세우든 미투의 외침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침묵하는 이들에게도 귀 기울여야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들을 수 있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미투#metoo#미투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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