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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용석]‘워라밸’ 대신 ‘에밀레’ 택하는 1% 인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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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용석]‘워라밸’ 대신 ‘에밀레’ 택하는 1% 인재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입력 2018-01-26 03:00수정 2018-0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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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1부 차장
내로라하는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인 A 사장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상위 1% 인재들이 이젠 우리 회사에 안 들어옵니다. 몇 년 사이 신입사원 수준이 뚝 떨어졌어요.”

부장급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는 데다 복지도 국내 최고 수준인 회사다. 이미지도 좋다. 그런데 왜 인재가 오지 않을까. 입사한 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신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게 회사가 진단한 이유 중 하나다.

며칠 후 만난 최두환 포스코ICT 사장. 그는 “인재들이 만족스럽게 일하는 회사는 무조건 잘된다”고 믿는 주의다. A 사장 얘기를 했더니 최 사장 자신은 CEO를 맡은 뒤 회사 사업을 대폭 정리했다고 한다. 내부 계열사를 고객으로 하는 시스템통합(SI) 사업을 과감히 줄이고 그 대신 스마트 팩토리 같은 새로운 사업을 크게 늘렸다. 쉽지만 성장이 더딘 일은 버리고, 도전적이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일을 택한 것이다. 피 같은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최 사장은 “성장 사업에서 열심히 하면 몸값이 오를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직원들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하면 천국 같은 복지 혜택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상위 1% 인재를 끌어들일 수 없다.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세계의 천재들이 모이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이라고 하면 언제나 제공되는 훌륭한 음식들, 소파에 누워 자유롭게 일하는 문화, 아무 때나 출퇴근하는 유연한 근무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상당수 직원들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시간 일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실리콘밸리에선 각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전설’인 마이클 모리츠는 17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실리콘밸리가 달콤한 복지 혜택에 젖어 있는 동안 중국 벤처는 쉬지 않고 일한다. 열심히 일하면 많이 얻는다는 중국 벤처 정신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중국을 따르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창업가들은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성공을 갈구하며 미친 듯이 일한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중국의 A급 인재들이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을 버리고 미세먼지 가득한 중국으로 유턴하는 것은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열망을 좇기 위해서다.

1% 인재들이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에 인재 유치는 ‘국가 CEO’인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숙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의 마음을 사지 못하는 때를 틈타 “미국의 인재여, 프랑스로 오라”고 구애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이 열리기 직전 길목에서 ‘미니 다보스’를 여는 ‘앰부시(매복) 마케팅’으로 혁신기업 고급 두뇌 유치에 성공했다.


1% 인재들에겐 자기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인지가 중요하다. 투자 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나라가 기업인에게 얼마나 많은 자유와 명예를 주는지를 본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본다. 열망을 실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워라밸을 포기하고 에밀레종을 만들 듯, 자신의 뼈와 살을 태워 일하려는 인재들이 넘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1% 인재들이 열망을 실현할 만한 터전인가? 우리는 그런 터전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 실현이라는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진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워라밸#최두환 포스코ict 사장#실리콘밸리#회사 복지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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