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기정]노련한 관료들이 왜 실패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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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산업2부 차장
고기정 산업2부 차장
‘경력직 공채로 뽑은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신입 수습이었다.’ 정권에 대한 일부의 시각이다. 가상통화 혼란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장관이 발표한 대책을 청와대가 수습하고, 경제부총리는 부처 간에 이견이 있다고 했다. 참여정부에서 국가를 경영해봤던 경력자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 통에 투자자들은 난리가 났다.

강남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집값 잡겠다며 판을 벌여놓고는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라고 하는 것 같다. 집권당 대표는 한술 더 떴다. “다주택자 보유세를 강화하지만 집 한 채 있는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강남 집값이 오르는 건 실수요든 가수요든 집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서다. 부동산 대책과 특목고 입시 변경으로 강남 집값이 폭등하자 지금 강남에 못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을 가진 사람이 늘었다. 제2, 제3의 강남을 만들거나 강남 내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하는 게 경제학적 사고다. 집권세력은 “부자들을 혼내 줄게”라고 한다.

최저임금 정책은 배가 산으로 간 경우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 제재하겠다고 했다. 이럴 거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최저임금을 안 지키면 신원을 공개하고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게 하겠다. 600만 소상공인이 모두 그 대상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정부는 곧 추가대책을 발표한다. 세금이 들어갈 것 같다. 국민 위한다는 정책을 내놓고 그 부담을 국민더러 지라는 격이다.

자산과 임금 시장에서 이렇게 동시에 문제가 터지는 일은 드물다. 진원지가 정부라서 더 혼란스럽다. 최저임금은 표류하고 부동산과 가상통화 광풍은 진행형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자산주도 성장으로 둔갑할 판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관료들은 그대로다. 서랍만 열면 규제 대책과 육성 대책 파일을 맞춤형으로 뽑아낼 수 있다. 노련하고 노회하다. 그런데도 왜 혼란이 생기는 것일까. 한 고위 공무원은 “청와대 코드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신입 권력자들은 야심은 크지만 공부는 덜 돼 있는 것 같다. 공정이나 정의 말고 교활한 돈의 논리를 잘 아는 전문가가 내부에 있는지 의문이다. 모처럼 정권 편이 된 강남좌파와 2030세대를 생각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니 관료들은 헷갈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까지 보유세 개편에 부정적이었다. 관료들은 보유세에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소득 없는 곳에 매기는 세금이어서다. 다른 나라보다 보유세율이 낮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세목별 세율이 국가별로 다른 건 그럴 만한 연혁과 배경이 있어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세율을 조정할 거면 다들 내리는 법인세는 왜 올렸나.

실정(失政)과 혼란이 계속되면서 ‘문빠 위에 쩐(錢)빠’라는 말이 나온다. 가상통화야 아직까진 정부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규제에 취약한 초기 시장이라서 그렇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으름장이 안 먹힌다. 사람들이 돈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조만간 가상통화 시장도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는 식으로 저항할 것이다. 이런 게 쌓이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허망한 지지율처럼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부를 더 하든, 진짜 전문가를 찾아서 쓰든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현실적인 듯하다. 노무현 정부 때 이헌재 부총리는 ‘386세대 경제 무지론(無知論)’을 지적하며 정부를 떠났다.
 
고기정 산업2부 차장 koh@donga.com
#강남 부동산#최저임금 정책#신입 권력자#김동연 경제부총리#보유세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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