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승건]“장애인체전 먼저” 충북의 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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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5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올림픽 폐막 12일 뒤(3월 9일)에는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 별로인데 패럴림픽이야 오죽하랴. 관심은커녕 패럴림픽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영화학도인 최창현 씨도 그랬다. 단편영화 여러 편을 연출한 그가 몰랐던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호주의 여성 코미디언이자 저널리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스텔라 영(1982∼2014)의 강연 영상을 본 게 계기였다. 스텔라 영은 “장애인은 비장애인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의 성취는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장애’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녀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었다는 최 씨는 요즘 다큐멘터리 영화 ‘패러렐’(Parallel·병행)을 만들고 있다. 주제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통합.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개회식부터 함께하는 대회를 통해 올림픽을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종목을 세분하되 메달 집계를 합산한다면 장애인 선수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패럴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부터 뜻을 같이해야 되는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예를 하나 들자. IOC는 2011년 7월 총회를 앞두고 평창, 뮌헨(독일) 등 2018년 올림픽 개최지 후보 유치위원회에 “각국은 IOC의 결정 때까지 패럴림픽 동반 개최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IOC는 이미 2000년에 IPC와의 시드니 협약을 통해 동반 개최 및 동등한 수준의 지원을 명문화했지만 패럴림픽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후원이 늘자 IOC의 몫이 줄어들 것을 경계해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국제사회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지만 IOC와 IPC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IPC 내부에서 패럴림픽을 따로 열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내 묻혔다. 패럴림픽만 개최하겠다는 도시가 쉽게 나오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15일부터 충북 일원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체전)는 좋은 선례로 남을 대회다.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보다 먼저 열리기 때문이다. 올림픽-패럴림픽처럼 전국체전을 먼저 개최하던 것을 바꿨다. 장애인체전을 뒤에(10월) 열면 상대적으로 추위에 약한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높아지고 경기력에도 지장이 있다는 대한장애인체육회의 건의를 충북이 전향적으로 수용했다. 비장애인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여러 이유가 나왔지만 요약하자면 “어디 감히 장애인이 먼저”다.

‘하늘과 땅 차이’의 방송 중계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위상은 비교가 안 된다. 장애인체전도 마찬가지다. 더부살이 신세였다. 전국체전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만의 행사’가 됐다. 규모가 훨씬 큰 전국체전에 앞서 열린다면 그런 소외감은 훨씬 덜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장애인체전을 먼저 한다고 전국체전의 ‘순위’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순서’만 바뀔 뿐이다. 장애인체육 관계자들조차 놀라게 한 충북의 배려가 지속가능한 일의 시작이자 통합체전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충북 전국장애인체육대회#충북의 배려#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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