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外高, 제발 없애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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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정 주며 같이 사는 개의 건강을 확인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코가 촉촉하게 젖어 있으면 건강, 말라 있으면 이상신호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유심히 개를 관찰하다 코가 마른 사실을 확인한 사람이 있었다. 병원으로 데려가야 상식에 맞겠지만 이 사람은 “건강해져라”라고 말하며 개 코에 물만 뿌려줬다. 왜 그랬을까.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론 개가 고치기 힘든 중병에 걸렸을 듯하니 관리자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봐 물만 뿌려놓고 주변을 속이려 들었을 개연성이 있다. 달궈진 대선 판에서 몇몇 후보가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을 없애겠다고 목청을 높이니 병든 개 코에 물 뿌리는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자식을 외고나 국제고에 보낸 사람 중 외국어를 잘 가르치고 싶었다거나 국제화 역량을 키워주려 그 학교에 보냈다는 사례는 못 봤다. 지난해 전국 31개 외고 졸업생 중 어문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23% 수준에 그쳤고 이 비율은 매년 떨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외국어를 잘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일반고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찾았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내신이 불리할 텐데도 굳이 외고나 국제고 자사고를 선택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다 같이 엎드려 자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고 예체능 시간은 자습으로 때우는 걸 교육이라 받아들일 수 없는 학부모의 고육지책이다. 유별난 교육열이 아니다.

학교에 우수한 학생이 몰려드니 월등한 입시 성과를 냈을 뿐이고 불법을 저지른 일도 없는데 폐지라는 철퇴를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 나라 공교육 붕괴가 외고 탓인가, 아니면 형편없는 일반고 교육환경 때문인가.

일반고 교육환경을 혁신하려면 모두가 입시에 매달리지 말고 직업교육 받는 학생을 늘려야 한다. 고졸자 직장인 급여를 대졸자 못지않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우수 학생을 잘 가르칠 수준 높은 교사가 배치돼야 하고 낮은 학력 학생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별도의 지원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복잡하고 지난하다.

이런 난제는 싹 무시하고 그저 외고 때려잡기로 표심을 얻으려 한다. 외고 등에 진학하는 ‘표’보다 못 가는 표가 훨씬 많으니 증상과 원인을 알면서도 그저 개 코에 물 뿌리기를 선택하는 게 이 나라 대선 후보다.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겠다고 말하면서 추락하는 교육 현장 앞에선 눈을 감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고1 학생의 2015년 성적은 역대 최저였다. 수학은 30점, 과학은 22점 하락해 중국 일본에 뒤처졌다. 2012학년도 수능에서 물리Ⅱ를 치른 수험생은 2.94%에서 2016학년도엔 0.59%로 낮아졌다. 화학Ⅱ, 생물Ⅱ 등 다른 어려운(심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학생 실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이렇게 해도 창의력이 쑥쑥 크고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글로벌 인재로 키울 수 있다는 건지, 미국 일본 중국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아느냐고 묻고 싶다. 나도 외고 국제고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학교 이름만 있을 뿐 외국어 교육 시키지 않고 글로벌과는 거리가 먼 수능에 집중하는 학교가 적지 않은 탓이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모자라면 그 부분에 맞는 교육을 시켜 주기만 해도 외고를 찾아다닐 이유가 없다. 음악시간에 악기 가르치고 체육시간에 제대로 된 경기 종목을 익히게 해 주면서 삶의 여유와 멋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교육을 일반고는 왜 못 하나. 외고 간판 떼기보다 일반고 교육 정상화가 먼저다. 그러면 설립 목적에서 멀어져 가는 외고는 저절로 간판을 내리지 않겠나.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4차 산업혁명#외국어고등학교#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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