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외양간 ‘안 고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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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나도 댓글 보고 고개 끄덕였으니 말 다했지.”

소래포구에서 횟집을 하는 A 씨(48)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아버지 때부터 30년 넘게 이곳에서 배를 타고 장사를 했다. 그가 격하게 공감한 건 18일 소래포구에서 불이 났을 때 누리꾼들이 보인 반응이다.

‘비싸고 불친절한 소래포구’ ‘악명 높은 소래포구의 바가지’ ‘횟감 바꿔치기 기억이 선명하다’.

화재 기사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은 소래포구를 비난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인과응보’라는 취지의 과격한 표현이 줄을 이었다. 피해 상인을 걱정하는 댓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해 복구와 상인 지원을 언급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11월 대구 서문시장, 올 1월 전남 여수 수산시장 화재 때 시민들의 반응과는 딴판이다. 그때는 전국에서 성금이 답지할 정도였다. A 씨는 “댓글에서 지적한 상인들 문제는 나 역시 똑같이 느끼던 것”이라며 “불이 나서 피해를 입었는데 동정은커녕 욕을 먹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A 씨의 횟집은 이번에 불이 난 곳과 거리가 있다. 허가받은 식당이다. 반면 불에 탄 가건물 내 좌판은 모두 무허가다. 가건물이 들어선 곳은 개발제한구역인 국유지다. 상인들은 이곳에 가건물을 세우고, 구역을 나누고, 좌판을 깔고, 수조를 들여놓았다. 상인들은 100만∼200만 원의 토지 점용료를 낼 뿐이다. 무허가 좌판을 상인들끼리 사고파는 불법도 관행처럼 내려온다. 좌판 한 개를 매매할 때 최고 1억5000만 원의 권리금이 오간다고 한다. 좌판 임대료가 매달 500만 원에 이르고 전전대(임차인이 다른 사람에게 또 임대하는 것)가 성행한다고 전해진다.

무허가 시설에 합법적인 관리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상인들이 소방시설을 설치할 의무도, 소방당국이 이를 확인할 의무도 없다. 소화기 80여 대와 소화전이 있지만 사람 없는 새벽에는 무용지물이다. 누군가 나서서 스프링클러라도 설치해야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래포구를 바꿀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2010년과 2013년 소래포구에선 이번과 비슷한 화재가 났다. 그때도 판박이처럼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그냥 불에 탄 시설을 치우고 얼기설기 가건물을 다시 세워 2주 만에 장사를 재개했다. 소방시설을 늘리는 것보다 그게 훨씬 빠르고 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친 게 아니라 안 고쳤다는 게 맞다. 문제는 세 번째 화마를 겪은 뒤에도 과거와 똑같은 모습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하루빨리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30일 내 복구’로 화답했다. 정확한 원인도 나오지 않았는데 20일부터 화재 잔해가 치워지기 시작했다. 현장 정리에는 정부의 특별교부세가 투입된다. 바꿔 말하면 무허가 시설을 짓기 위해 세금으로 마련한 정부 예산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참에 소래포구 어시장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상인들과 지자체의 분위기는 다급하기만 하다. 다음 달이면 꽃게철이기 때문이다. 지금대로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는 다시 비닐천막을 덮은 가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결국 경찰이 나섰다. 무허가 좌판의 불법 실태를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번 기회에 합법화를 추진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소래포구 상인들과 지자체가 스스로 외양간을 고칠 수 있을까.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소래포구 어시장#소래포구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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