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신수정]대관령에 울려 퍼진 두 개의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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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대관령국제음악제 추진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신수정 대관령국제음악제 추진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올해 대관령의 여름은 두 개의 음악제가 주는 감동으로 가득 찼다.

10회를 맞은 대관령 국제음악제(GMMFS)는 정명화 정경화 자매가 강효 전 예술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오로라(Northern lights)의 노래’라는 주제로 차원 높은 감동을 선사했다.

첼로의 거장 다비드 게링가스와 강승민 사제가 함께한 ‘아렌스키의 현악 4중주’, 김수연과 지안 왕의 ‘에네스쿠의 현악 8중주’, 신현수·폴 황·주미 강·이유라 등 젊은 스타들이 솔로를 맡은 비발디의 ‘사계’, 도쿄 콰르텟 창단 멤버인 백발의 고이치로 하라다 교수가 악장을 맡고 콘트라베이스의 거장 미치노리 분야가 연주자들의 뒤를 감싸듯 받쳐 준 스트링 체임버는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 줬다. 동서양과 거장과 신예, 청중과 연주자가 하나 된, 말 그대로 음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감동이 커서였을까? 뉴욕 토박이인 한국음악재단의 이순희 대표는 “미국 뉴욕에서도 듣기 힘든 이 공연을 뉴욕 링컨센터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거장 게링가스, 게리 호프먼, 지안 왕이 한 무대에서 차례로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세계 어느 곳에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피아니스트 백혜선 손열음 김다솔, 소프라노 유현아 등 너무나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우리 음악가들을 보며 그저 자랑스럽기만 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감동은 뒤를 이어 6∼1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PSMF)’로 이어졌다.

올림픽 뒤의 패럴림픽처럼 프로들의 국제음악제 뒤에 이 같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여했던 첼리스트 정명화와 지적장애 피아니스트 이관배(서울대 음대 1학년),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과 지적장애 플루티스트 박가은의 합주는 그 자체로 음악을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필자도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이어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에서 주미 강, 정명화 등과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함께했다.

앙상블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 말고도 서로 간의 집중력과 교감이 필요하다. 악보 속에 그려진 음표를 연주하는 것을 넘어 연주하는 동안 상대방의 소리와 밸런스, 감정의 표현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집중과 교감이 다소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에게 앙상블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이겨 내고 연주자들과 함께 훌륭하게 앙상블을 이뤄 내는 것을 보며, 또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필자는 음악이 주는 진정한 기쁨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대부분의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악기의 소리를 낸다는 것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인고와 노력의 결과이다. 비록 음정이나 박자가 다소 맞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힘든 과정을 넘어서 무대에 서기 위해 또다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 시간의 아픔과 기쁨, 노력이 객석의 부모들을 울게 했고, 그 대견함이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선 멘토들에게 벅찬 희열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우리 아이들과, 그들을 지도해 준 멘토 선생님들, 그리고 빛이 안 나는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다해 준 두 음악제의 스태프…. 이 모두의 마음과 정성이 하나로 빚어진 무대가 바로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아우르듯 페스티벌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모두가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공연이 다 끝나고 한번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베토벤의 ‘합창’이 연주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상의 베토벤이 가장 흐뭇하게 미소 지은 연주회는 바로 우리 천사들의 ‘합창’이 아니었을까.

신수정 대관령국제음악제 추진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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