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폐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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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직전 표심 요동치는 기간, 여론조사 발표 못 해 ‘깜깜이’
결국 참사 수준 오보예측 불러
‘선거관리 편의’ 위한 낡은 제도… 유권자위해 폐지 공론화 시작해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내일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선거의 계절이 재개된다. 지난 총선 당시 여론조사가 야기한 혼란을 기억할 것이다. 내년 총선 전에 관련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총선 직후 당시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됐던 674개 여론조사를 분석해 여론조사가 부정확했던 원인을 살펴봤다. 우선 여론조사에 기반해, 각 후보의 ‘당선 가능도’를 추정하여 정당별 의석수를 계산해 보면 당시 새누리당 166석, 더불어민주당 83석, 국민의당 34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2석 정도로 예측됐다. 여론조사가 새누리당(122석)과 민주당(123석)을 기준으로 무려 40석 정도의 오차를 보인 것이다. 당시 대부분 조사기관과 언론사가 내놓은 예측과 일치하는 결과다. ‘참사’ 수준이다.

이 참사에는 3대 원인이 있다. 우선 표본할당 배율이다. 대개 조사기관들은 특정 집단에 할당된 응답자 수를 다 채우지 못했을 때 응답자가 응답을 거부한 사람과 유사하다는 가정하에 응답자들의 대표 배율을 높인다. 이 배율이 1 올라갈 때 실제 선거 결과 대비 ‘1위 후보-2위 후보’에 대한 오차가 약 1.7% 커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업체들은 표본할당 배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안심번호 사용이 불가능했던 점도 참사의 주요 원인이다. 표본의 왜곡 방지를 위해 유·무선 혼합 조사는 필수가 된 지 오래다. 반면 특정 지역구의 휴대전화 번호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통신사로부터 암호화된 안심번호를 제공받아야 한다. 반면 당시 여심위는 정당 조사 외에는 안심번호 사용을 불허하여 결과적으로 참사를 방조하고 말았다.

실제로 유·무선 혼합 조사의 경우 오차가 약 2.6% 작았다. 당시 조사에 활용됐던 무선전화 번호는 제대로 된 대표성을 갖춘 안심번호가 아니다. 만약 안심번호가 활용됐다면 오차를 더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현재는 규정이 바뀌어 언론사 선거조사도 안심번호를 활용할 수 있어 내년 총선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은 하나의 참사 원인은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다. 총선같이 정보가 부족한 선거에서는 선거 직전인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동안 여론이 가장 많이 변한다. 그런데 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깜깜이’ 선거가 된다. 실제로 공표금지 기간 직전의 조사들은 그 이전 조사들보다 평균 1.8% 정도 오차가 작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주에도 조사 결과가 공표됐다면 오차가 더 줄었을 것이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여론조사가 표심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조사 결과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공연히 유통된다. 또 전혀 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는 ‘빅데이터’ 기반 예측이 난무한다. 2017년 대선 당시 정당마다 구글 검색 빈도의 추세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에서 한 달 혹은 특정 날짜 하루 기준으로 저마다 유리한 수치를 선택적으로 제시하며 우위를 주장했다. 더구나 이런 관심도는 오히려 해당 후보에게 부정적인 검색으로 올라간 경우도 많았다. 세계적으로도 프랑스와 브라질 등 소수의 나라에서만 시행된다.

상황이 이런데 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존치되는 것일까? 선거 관리 기관에는 선거 직전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와 논란의 소재가 되는 것이 골칫거리일 수 있다. 또 여론조사 업체들은 틀려도 공표금지 기간 동안 ‘여론이 변했다’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각 정당은 자체 여론조사로 여론 파악이 가능해 아쉬울 것이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몫이 된다.

공표금지 기간을 폐지하면 빅데이터를 가장한 자격 미달의 자료에 근거한 ‘가짜뉴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다소 부실한 여론조사라도 아예 대표성 없는 일부 빅데이터 분석보다는 낫다. 또 실제 선거 결과와의 직접 비교가 가능해져 자격 미달의 조사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선거에 임박해서는 각 정당의 유불리 계산으로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다. 지금이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폐지를 공론화할 시점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보궐선거#여론조사#선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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