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객관식 수능, 이제는 바꿔야 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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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너덧개 중 정답 고르는 객관식 시험
입시제도로 수십년간 변화 없이 사용돼
학생의 노력과 역량 평가하기 수월하지만
공부의 즐거움 빼앗고 창의력 계발도 요원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날씨가 추워지니 떠오르는 게 입시다. 실제 수능 날씨는 춥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수능은 춥다. 시험 자체가 사람을 춥게 만들었고, 그것을 대비하느라 상실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우리를 춥게 만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험문제가 엄숙하게 여겨져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많았다. 참고로 나는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보내고,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고교 교과서에는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한번은 모의고사에 그 시가 나왔고,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구절 중 짐승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위의 시에서 나오는 짐승은 무엇인가?’가 질문이었다. ①기린 ②사슴. 많은 학생이 정답을 맞혔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자주 나왔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중 ‘누님’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위의 시에 등장하는 누님의 나이는?’이 문제였다. ①20대 ②30대 ③40대. 정답은 40대였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 정돈된 이미지를 보여주어 그렇다고 국어 선생님은 설명했다. 10대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20대 누님들도 충분히 정돈되고 성숙해 보였는데 말이다.

서울도 완전히 다른 건 아니었다.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정착했을 때 바로 옆집에 여교수가 살았는데 낙담한 표정으로 딸의 유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발단은 중학교의 시험문제였다. 중학교에 다니던 딸의 시험문제로 ‘오이소박이의 주재료는?’이 나왔다. ①오이 ②부추. 정답은 무엇일까? 딸은 오이로 답했는데 답은 부추였다. 결국 그 아이와 부모는 유학을 결심했고, 지금 하버드대 법대에 천재 대우를 받으며 다니고 있다.

서울의 입시문제 파동에서 국대급은 아마 경기중학교 입시에서였을 것이다. 자연 과목 18번 문제로 엿을 만드는 내용이 나왔는데, 밥에다 엿기름을 섞는 과정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가 질문이었다.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①디아스타제’를 답으로 발표했으나 ‘②무즙’을 답으로 택한 학생의 부모들이 승복하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무즙을 넣어 엿을 만들어 보이는가 하면 경기중학교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서울고등법원 특별부는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고, 5개월이 지나서야 30여 명의 학생이 경기중학교에 전학생 신분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수능의 효과성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동일하다. 수능이 학생들의 노력과 역량을 평가하는 데 효과성을 보유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 방식에 최적화되도록 허비한 시간과 창의적 학습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일자리를 대거 빼앗아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객관식 선다형 시험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험의 변별력 이전에 객관식 선다형 문제에 맞추어진 공부를 하느라 창의적 학습의 즐거움을 상실한 10대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휘두르는 폭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은 2020년도부터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입공통시험을 도입하기로 했다. 개혁의 기조는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이다. 일본에서는 사립대들이 센터시험을 요구하지 않을뿐더러 센터시험을 다시 볼 수 있는 재시험의 기회도 주고 있으니 우리보다는 현재에도 훨씬 유연한 편인데도 말이다.

평가를 하되 그것에 대비하는 과정이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개편하여야 한다. 객관성에 볼모로 잡힌 나머지 공부의 내용과 타당성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지난번 공론화위원회가 실패한 것은 수능의 절대평가 상대평가 방식과 대입 전형에 관한 것이었을 뿐 정작 수능의 개혁은 어젠다로 다뤄지지도 못하였다. 정권이 자신의 정치색을 강요하지 않으며 개혁을 하거나, 아니면 사립대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객관식 수능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수능#입시#객관식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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