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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한규섭]언론이 포털에 종속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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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한규섭]언론이 포털에 종속된 진짜 이유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입력 2018-06-26 03:00수정 2018-06-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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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저널리즘 무시한 언론 신뢰 안해
공정한 기사 제공 못하면 설 자리 없어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근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이 초래하는 폐해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다. 언론 생태계 복원을 위해 포털의 현 영업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언론도 ‘억울한 피해자’만은 아니다.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를 무시한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드루킹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포털들은 언론사들에 설문조사를 돌려 ‘나갈 테면 나가 보라’는 태도를 취했다. 주류 언론사들에는 ‘굴욕’이었다. 언론이 포털에 이 정도로 종속된 원인이 뭘까?

언론의 신뢰도 하락 때문이다. 필자는 2016년 모 조사기관에 의뢰하여 ‘감정적’ 선호의 척도인 ‘감정온도계’(0은 비호감, 10은 호감)를 활용해, 대표적 기업, 브랜드, 언론사들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대표적 보수신문 A는 평균 5.2점, 대표적 진보신문 B는 평균 5.4점을 받았다. 대기업 ‘적폐’의 상징인 삼성전자(7.0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삼성전자(7.4점)를 보수 성향의 A신문(6.1점)보다 선호했고, 심지어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도 삼성전자(6.6점)를 진보 성향의 B신문(6.0점)보다 선호했다. 또 젊은층의 높은 지지로 언론사 중 가장 호감도가 높았던 C종편(6.4점)도 삼성전자보다 선호도가 낮았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글로벌 의식 조사(2017년 Global Attitude Survey)’에 따르면 한국 참여자의 27%만이 정치적 이슈에 대한 언론의 ‘공정성’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37위였다. 포퓰리즘과 정파적 언론의 상징인 그리스(18%)보다 불과 한 계단 높았다. 미국(47%)이나 일본(55%)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아르헨티나(37%)나 콜롬비아(38%)보다 낮았다. 지난해 6월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보고서에서도 36개국 가운데 최하위의 신뢰도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언론 신뢰도가 낮은 이유로 한국 유권자들의 양극단화를 꼽는다. 즉 진보 유권자들은 보수 언론을, 보수 유권자들은 진보 언론을 낮게 평가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2016년 수행한 현장실험에서 약 1000명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동일한 기사들을 작성 언론사의 이름만 바꾸어 제시했을 때 얼마나 클릭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언론사 이름을 일종의 ‘실험 처치’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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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미 2010년 논문에서 미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유사한 현장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동일한 기사임에도 진보 참여자는 진보 매체의 기사로 제시되었을 때, 보수 참여자는 보수 매체의 기사로 제시되었을 때 선호도가 높았다. 또 이러한 현상이 정치뿐 아니라 스포츠나 여행 등 소위 연성뉴스에서도 나타났다. 이 논문은 1000회 이상의 인용횟수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2016년 한국 연구에서는 어느 언론사의 기사로 제시되든 유사한 정도의 클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진보나 보수 참여자도 특정 언론사의 기사를 더 읽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유일한 요인은 기사가 제시된 위치였다. 즉 참여자들은 언론사의 ‘이름값’에 상관없이 맨 위에 위치한 기사를 더 많이 클릭했다. 이미 유력 언론사의 ‘이름값’이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포털들이 언론사들에 절대적으로 우월적 입지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왜 유권자들은 언론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릴까?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가치인 객관성과 공정성이 희박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취재도 하기 전에 기사의 방향이 잡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사나 인터뷰 내용에 맞지도 않는 제목을 입맛대로 뽑고 억지주장을 펴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독자들은 기사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전문가들은 진의가 왜곡될까 인터뷰를 주저한다. 이것까지 포털을 탓할 순 없다. 오랫동안 형성된 한국 언론 전체의 ‘브랜드’다.

포털은 뉴스 유통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제공하지 못하면 ‘포스트 포털’ 시대에 더 이상 주류 언론이 설 자리도 없을지 모른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뉴스#드루킹 사건#언론 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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