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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하준경]토지공개념, 조세체계 합리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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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하준경]토지공개념, 조세체계 합리화부터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입력 2018-03-31 03:00수정 2018-03-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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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술 체화된 인적자본은 개인이 소유권 유지 가능해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수호… 이에 합당한 과세가 필요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사유재산권은 인류의 경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제도다. 소수 특권층이 독점하던 재산권이 널리 허용되자 민간의 투자 유인이 획기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재산권이 소중한 만큼 이제 재산권 보장의 비용도 꼼꼼히 따져 보자. 특히 이 비용을 땅과 다른 세원들 사이에 어떻게 분담시킬 것인가는 토지공개념과 관련해서도 중차대한 문제다. 부의 원천이 되는 유형무형의 재산들, 즉 인적 자본, 지적 재산, 물적 자본, 토지 각각의 소유권 유지비용이 어떤지부터 살펴보자.

우선 인적 자본은 사람의 몸에 체화된 지식·기술이다. 뇌 속 신경망에 존재하며, 소유자가 죽으면 함께 사라진다. 이동성이 크고 탈취가 곤란하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 때 여기저기서 재산 몰수와 추방을 당하는 바람에 교육 투자로 재산을 뇌 속 인적 자본 형태로 만들어 지니고 다녔고, 그 결과 이들 중 전문 지식인이 많아졌다는 설도 있다. 인적 자본 소유권은 국가가 없어도 소유자 스스로 지키지만 결국은 자연 소멸된다.

반대로 지적 재산은 사람 몸 밖에 문서나 파일 등 정보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기술이다. 작은 메모리칩에 저장되니 지키기 쉬워 보이지만 유출되면 통제가 어려워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적 재산은 일정 기간만 보호되고, 소유권이 사라지면 결국 공공재가 된다.

물적 자본과 토지는 소유권을 개인과 국가가 함께 지킨다. 물적 자본은 물리적으로 마모되니 놔두면 소멸되지만 땅은 영원하다. 땅은 옮길 수도, 새로 만들 수도 없어 침탈 가능성에 상시 노출된다. 땅 사용자가 지키는 일을 일부 담당하지만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만약 경찰서비스가 없다면 누구든 힘으로 땅을 점유할 것이고, 등기제도가 없다면 엉뚱한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다. 국방서비스가 없다면 다른 나라가 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비싼 땅일수록 더 많은 이들이 눈독을 들이니 공권력에 대한 의존성도 커지게 된다.

요컨대 재산권 보장을 위한 공공서비스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재산은 땅이고 가장 적게 의존하는 재산은 인적 자본이다. 인적 자본 소유권은 모든 권리의 기초인 생명권만 보장되면 유지되지만, 토지 소유권은 소유자(및 상속자)의 생명권, 국가의 존재, 재산권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 재산권 유지비용은 얼마나 공정하게 분담되고 있나. 한국의 토지 가치는 국부의 50%를 넘어 20∼40% 수준인 서유럽·일본을 크게 앞선다. 반면 세수 중 부동산 보유세는 3% 남짓으로 주요국의 절반도 안 된다. 토지재산권 유지비의 많은 부분이 다른 세원들과 병역에 전가되는 셈이다. 땅 소유자를 우대하는 분담체계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부가 ‘재산 있는 자’들을 ‘재산 없는 자’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는데, 한국은 더 나아가 ‘있는 자’들의 땅을 보호하는 데 ‘없는 자’들의 돈과 시간까지 투입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이렇게 편향된 비용분담 체계는 ‘없는 자’가 쉽게 ‘있는 자’가 될 수 있을 땐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재산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 현실에선 심각한 체제 위협 요인이 된다.

이제 토지공개념 논의도 공허한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비용의 사회화와 수익의 사유화’를 방조하는 개발시대 부동산 패러다임을 보다 공정하게, 또 효율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 작업을 시장 친화적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조세체계를 선진화해 조세 부담의 편향성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가 밤낮없이 지켜주는 토지 소유권의 가치에 합당하게 세금이 분담돼서 다른 쪽의 과다한 부담이 덜어진다면 비싼 땅을 소유한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증세나 감세, 공익에 따른 감면이나 할증은 그 다음 문제다. 미국은 토지공개념이란 말은 쓰지 않지만 보유세 1.4%를 매년 부과하니 산술적으로 71년마다 그 가치를 전부 회수하는 셈이다. 수명이 무한한 토지와 수명이 유한한 자산들 간의 불균형을 줄여주면 국민도 땅보다는 사람과 지식에 좀 더 눈길을 주지 않겠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사유재산권#토지공개념#자본#토지#재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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