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모든 짐을 법원·검찰이 떠안을 수 있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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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문제 생길 때마다 무조건 검찰고발이나 수사의뢰
사법과잉 바람직하지 않듯이
준사법적인 검찰권 행사도 최대한 신중해야 바람직
사법절차에 지나친 의존 말고… 정치문제는 정치권에서 풀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어떤 완벽한 제도를 갖춘 국가도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한 의혹과 분쟁의 발생을 피할 수 없다. 문제가 생기면 전말을 조사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토대로 책임을 가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제가 생겼는데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거나 공정한 문책이 이뤄지지 않고 의혹이 확산되면 소모적 논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문제 해결 시스템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공적으로는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각종 행정조사, 수사와 재판 등 입법·행정·사법의 영역이 있다. 언론의 취재·보도와 시민단체의 감시 활동도 민간 분야에서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국회의 국정조사는 민주국가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문제 해결 절차다. 특히 조사 과정의 공개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정치적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행정기관은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여러 가지 형태로 조사할 수 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나 금융감독원의 각종 금융 조사는 전형적 사례다.

최근 국가정보원이나 해양수산부 등 각 부처의 각종 태스크포스(TF) 활동도 마찬가지다. 특히 감사원은 독립적으로 국가의 예산 집행에 대한 회계 감사와 직무 감찰을 통해 변상 책임을 판정하고 비위 공직자의 징계 처분을 요구하는 전문적 조사·판단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목적이 다르고, 고유한 장단점을 갖춘 제도들이 현안마다 가장 적합한 해결 방안을 선택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민을 대표해 공개 절차를 거쳐 진상을 규명하고 정치적 책임을 추궁함과 동시에 재발 방지 제도를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매우 효율적인 문제 해결 수단이다. 합목적적인 조사로 관련자의 책임을 가리고 시스템을 효율화해 즉각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문적 행정조사가 안성맞춤일 것이다.

범죄적 요소가 농후하고 신속한 진상 규명으로 형사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면 의당 검찰이나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검찰에 고발 내지 수사의뢰를 해 수사와 재판, 즉 형사사법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오죽하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담당 법관들과 중앙지검 검사들이 장기간의 격무와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지거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입법과 행정 기능은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형사 사법 작용만 국정의 전부인 양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수사는 가장 정밀한 수준의 진실 파악이 가능하도록 특화돼 있다. 우리 검찰의 신속·철저한 진상 규명 역량에도 이론이 없다. 그래서 누구든 검찰에 의존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에는 나름대로의 한계나 부작용이 있다. 사법 속성상 경우에 따라서는 실체적 진실 규명에 지장을 받더라도 적법절차의 원칙이나 인권 보호가 더욱 중요하다.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수사·재판 과정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공소시효 제도는 수사에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수사와 재판은 인권 침해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감기든 배탈이든 가리지 않고 외과수술을 해댄다면 몸이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다산 정약용이 형법서의 제목을 ‘삼가고 또 삼가는 책(흠흠신서·欽欽新書)’이라 붙였겠는가.

복잡다기한 현대사회는 전문가의 시대이다. 정치 문제는 정치권에서, 경제 현안은 기업인들이, 환경 이슈는 환경 전문가들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법관과 검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전문 영역의 문제를 단시간 내에 공부해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법원·검찰을 위해서도 사법 절차에의 지나친 편중이나 의존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흔히 검찰은 준사법적 기관이라고 한다. 사법 과잉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사법부 자제론’이 나왔듯이, 준사법적 속성을 지닌 검찰권의 행사 역시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검찰은 고발이 있는 한 수사할 직무상 의무가 있고 거부할 수 없는 만큼 정치권 등 외부의 협조와 고려, 그리고 분발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사법과잉#검찰고발#사법부 자제론#정치문제는 정치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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