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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일호]스토리텔링이 빈약한 한국의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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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일호]스토리텔링이 빈약한 한국의 비엔날레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입력 2017-08-29 03:00수정 2017-08-2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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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 미술계 화제는 카셀-뮌스터-베니스 그랜드투어
이들이 성공한 것은 도시에 담긴 영욕의 스토리를 삶의 미술로 구현했기 때문
존재감 줄어든 우리의 비엔날레, 그 원인 냉정히 따져보고 도시에 맞는 스토리텔링 찾아야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올해 봄부터 미술계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화제는 단연 미술 그랜드 투어였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5월 13일∼11월 26일),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6월 10일∼9월 17일), 그리고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6월 10일∼10월 1일)가 동시에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경향들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그랜드 투어란 17세기 중반∼19세기 당시 미술 분야에서는 다소 뒤처졌던 영국 상류층 자제들의 유럽 대륙 여행을 뜻하는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과 르네상스 미술의 흔적을 살펴보고, 교양을 쌓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양성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유럽 대륙 문화에 대한 흠모와 동경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18세기 들어 조슈아 레이놀즈나 토머스 게인즈버러 같은 영국의 위대한 화가가 나왔다는 점에서 단지 상류층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 같고, 유럽 대륙 문화에 대한 흠모와 동경만도 아니었던 듯싶다.

지금 우리의 미술 그랜드 투어도 미술계 사람들만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미술 체험과 유럽 도시 관광을 목적으로 많이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도 최근 카셀에서 시작해 뮌스터를 거쳐 베니스로 향했다.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면서 눈은 호사했지만, 미술평론을 하고 있는 필자도 몇 가지 특징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벅찬 일이었다. 감동을 주는 작품도 많이 있었지만, 이것도 미술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작품도 꽤 있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세계의 예술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를 주목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까. 미술이란 세상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필자 스스로 더 생각하고 풀어 나가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다만 한 도시에 문화의 옷을 입히고 관광산업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각 도시의 성격을 눈여겨봤다. 카셀은 항공기나 전차를 제조했던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교회와 박물관 등의 도시 건물들이 파괴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인구 25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 뮌스터에도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중세 양식의 성당과 유서 깊은 건물들이 파괴된 일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 도시들에서 국제적 미술행사가 펼쳐지게 됐고, 그 이면에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정권의 반휴머니즘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아픈 과거의 치유라는 의미를 담아내려 했다.

두 도시가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면, 베니스는 상업도시답게 활기차고 시끄럽고 요란했다. 중세 시대 바다를 끼고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베니스는 당시 비잔틴 제국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의 기품과 종교적 권위까지 갖추고 싶어 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모방해서 지은 것이 산마르코 성당이었다. 지금은 이 도시 여기저기서 미술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영화제와 건축 비엔날레가 열리고, 상업도시로서보다는 문화도시로서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관광 수입도 올리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 해에 같이 열리는 대표적 국제 미술 행사로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있고, 시작의 동기도 비슷한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는 5·18민주화운동에서 받은 상처를 예술을 통해 극복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카셀 도큐멘타를 벤치마킹한 것 같고, 국제 미술 행사와 영화제가 이루어지는 부산은 베니스를 벤치마킹한 것 같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처음의 문화도시를 향한 동력이 식어 가고, 전시장 메우기에만 치중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의 첨단 국제도시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시작된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비엔날레도 규모가 점점 줄어 서울시립미술관의 미술행사 중 하나쯤으로 되어가고 있다.

내년이면 광주비엔날레가 12회, 부산비엔날레가 9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10회를 맞이한다. 필자는 지금쯤 지난 일들을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처음의 문화적 활력을 되살려 문화도시로 자리 잡기 위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질 것도 기대해 본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박일호#스토리텔링#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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