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노동 4.0과 노동법의 혁신 과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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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4.0시대 열려
디지털시대 직업은 노동계층 변화불러
근로자 중심으로 노동시장 바꾸려면
과감한 결단으로 노동법 손봐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선 후보들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입장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추상적이고 미래사회의 생활 변화에 대한 예측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노동 정책과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는 실망을 넘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나마 제시된 공약도 대체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 지원을 통한 격차 완화 등 일자리 문제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태풍은 예상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화가 우리 노동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노동시장과 노동법의 혁신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독일 정부가 2016년 11월 내놓은 ‘백서 노동 4.0’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노동법의 도전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근무 장소와 근로시간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 가능성을 넓히고, 구직자와 재직자의 직업 능력을 높이기 위해 고용보험의 역할을 강화하며, 자영업자의 자유를 촉진하고 직업적 실패를 치유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제시하였다. 건강한 노동을 위한 새로운 논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였고, 근로자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제기하였다. 전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맞이하여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논의되던 노동법의 개별 쟁점과 정책 대안을 잘 요약하였다. 독일이 왜 선진국인지, 정부와 지식사회가 어떤 책무와 역할을 맡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대한민국 노동 4.0을 위한 논의의 출발점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사회경제의 혁신적 변화가 현행 노동법 질서를 얼마나 구조적으로 바꿔 놓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새로운 미래에 우리가 원하는 노동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그래서 노동법에 대한 정치적 담론이 필요하다. 산업 4.0 시대 취업자들은 고숙련 업무와 시장가치가 높아 국가의 보호가 필요 없는 소수의 엘리트 근로자와 높은 보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수의 취약취업계층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법이 다수의 취약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주인공인 근로자가 실제로 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직업 활동을 통해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경쟁력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되어야 한다. 다단계로 이뤄진 기업 생태계가 근로자의 건강과 미래를 빼앗는 착취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다양한 시장참여자의 협업을 통해 건강한 시장 환경과 일자리를 증가시키려는 기업 생태계 본연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원하청의 상생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노동법의 구조 변화를 위해서는 사업장 질서를 스스로 세우는 근로자대표 제도의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노동 4.0 백서는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요건이며, 이를 위해서 다양한 고용 형태와 노동조직을 반영할 수 있는 종업원대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 종업원 간의 불공평한 분배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로자대표 제도의 마련이 노동법 구조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을 아우르는 민주적인 근로자대표가 구성되어야 이중 구조,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은 획일적이고 경직된 근로 기준을 넘어 좀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노동 조직과 노동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 기업과 근로자대표가 서로 대등한 당사자로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노동법의 규제들이 훨씬 더 개방되어야 한다. 또한 교섭 과정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당사자의 의지와 능력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사자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조속히 중재를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의 역할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기업은 변화에 대응하여 과감히 혁신하는 기업조직을 만들어 가고 근로자대표는 기업과 협력하면서 근로자 보호와 이익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파트너십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노동법 구조개혁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어떠한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선 후보#4차 산업혁명#노동시장#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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