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세직]경기부양만 하다간 위기 또 맞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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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기는 정책 실패로부터 올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그 대표적 예이다. 당시 위기는 장기성장률 하락에 정부가 과도한 경기부양 정책으로 잘못 대응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1992년 김영삼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한다. 건설경기 부양과 함께 재벌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막대한 은행 대출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상위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500%까지 상승하고, 투자율은 국내총생산(GDP)의 37%까지 올라간다. 투자 효율성은 급격히 하락하는데도 투자율이 높았던 것은 경기부양의 결과 막대한 과잉 투자가 초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과잉 투자가 부실 투자로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금융위기와 성장률 추락이 일어났다.

 위기에서 배우지 못하면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상황과 정책 대응은 20년 전 위기 이전과 흡사하다. 투자 효율과 장기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에도, 정부는 성장위기 해결을 위한 구조개혁보다는 경기변동 대응 수단인 경기부양에만 주로 의존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투자율이 30%의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지만, 이는 오히려 투자 중 상당 부분이 과잉·부실 투자로 판명이 나고 이것이 향후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위기를 겪고도 과거 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답습해 온 것은 경제정책 인프라가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몇십조 원이나 왔다 갔다 하는 정책을 시행한 후에, 그 정책들이 잘되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토론에 입각한 정책 검증 시스템도 없다.

 정책 검증 시스템의 부재는 국민들이 정책 실패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이에 따라 정책 실패가 계속 반복될 위험을 키운다. 정책 담당자가 정책에 다양한 이름을 붙여 포장하지만, 과도한 건설 투자나 금리 인하의 계속적 반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성장률이 3%대로 떨어졌음에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7% 달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경우도 있다. 결국, 어느 정권도 경기부양 정책으로 장기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권에서 장기성장률은 오히려 1%포인트씩 어김없이 하락했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최근 일련의 사태는 정책 결정 인프라의 취약성에 따른 정책 실패 위험성에 대해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현 사태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 정책이 ‘과학’과 논리보다 일부 그룹의 개인적 경험에 따른 ‘신화’나 소신에 입각해 결정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번 사태를 현 경제정책 인프라의 취약점을 진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가장 큰 취약점은 과학적 정책 분석에 능력 있는 경제학자들의 참여 부재이다. 상대적으로 ‘과학’보다는 ‘실행’에 능력 있는 관료그룹과 관변 학자들이 정책 제안과 결정을 도맡음에 따라 정책 결정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경제정책이 보다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결정되도록 경제학자들의 정책 제안 참여를 유도하여, 이들과 관료들의 협력으로 균형 잡힌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우수한 젊은 경제학자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인센티브 시스템이 왜곡되는 바람에 이들은 한국 경제보다 미국 경제를 더 많이 연구한다. 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책 담당자들과 정책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

 특히 차기 대통령 선거부터, 경제학자들이 경쟁 후보자들 및 경제참모, 경제정책의 과학성을 검증해 국민이 최고의 정책가를 선택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점점 더 거세질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차기 대통령 선거#박근혜#금융위기#정책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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