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열]국가 안위 생각하는 한가위 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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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휘영청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는 국민들 심사는 착잡하다. 청와대 실세와 사법부 부패 논란 끝에 터진 북한의 5차 핵실험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대체로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된 것들이다.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두 번째 탈퇴한 북한은 그동안 반복적으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댔다. 그때마다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안심했고, 뒷마당 중국을 통해 새는 줄 알면서도 앞마당 경제제재 조치로 위안을 삼았다. 소위 ‘전략적 인내’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마이웨이’로 일관한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 선언을 했고, 이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핵 도미노의 분기점에 서게 되었다.

지난 13년, 우리는 전략적 목적에 맞게 북한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내부 분열로 오히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당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퍼주기 논란’과 개성공단 폐쇄를 둘러싼 ‘북한붕괴론’이라는 정파 간 비난으로 시간을 보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방산비리는 북한보다 압도적인 국방비를 쓰는 우리 국방력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불렀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라진 행보는 국가적 위협 앞에서 분열하는 내부상을 드러냈다.

역대 정부는 장기 비전을 가지고 비대칭적 우위를 가진 경제력, 정보화 능력, 문화적 역량과 국제적 감각으로 북한의 ‘구조혈(構造穴)’을 공략해 밑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적극적이고 정교한 개입 전략을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그릇 안에 있는 개구리가 뛰쳐나갈 기회를 놓치면 익어 죽듯이, 서서히 장기간 지속되는 저강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조직도 임계점을 넘기면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을 맞는다. 저강도 위기의 위험은 익숙함에 있다. 익숙한 풍경을 따라가는 여행자는 종착점에 절벽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위험을 직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적 대응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위험은 숙성된다.

세월호의 침몰이 그랬다. 위험을 숙성시켜 파국으로 이끈 것은, 규제자가 피규제기관을 눈감아주고 피규제기관은 규제자의 퇴임 후를 챙기는 익숙한 관행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그렇게 무너졌다. 낙하산을 타고 부임한 최고경영자(CEO)와, 주인의식을 팽개친 임직원 간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청와대와 사법부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유능한 검사를 후견하는 스폰서, 판사를 영감님으로 모시는 변호사,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전직을 대접하는 현직이 공정성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땀 흘려 농사지은 결실을 차례상에 올려 조상께 감사하는 한가위, 그런데 소위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거세다. 엄격한 선물 금액 기준을 두고 생겨날 부작용과 수요 위축을 둘러싼 볼멘 목소리도 들린다. 400만 명의 일상을 바꾸는 일이니 여러 가지 혼란이 있을 터. 그러나 익숙한 관행을 깨는 과감한 계기가 절실하다.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이 가져온 대사증후군을 방치했다가는 심근경색이나 뇌중풍(뇌졸중)을 맞는다. 건강을 위해 과감한 다이어트와 운동이 필요하듯, 김영란법 시행을 사회생활에 낀 기름기를 빼고 건강한 기본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자.

아울러 북핵 위협 속에 맞는 한가위, 과도한 이념 갈등의 거품을 빼고 국가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에 국민 의지를 모으는 계기로 삼자. ‘이해관계 충돌방지’ 항을 누락시켜 김영란법을 반쪽으로 만든 정치권이여, 이 일에만은 앞장서시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가위#북한핵#위기#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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