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영옥]올림픽, 그 아름다운 최선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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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올림픽 하면 ‘대한민국 선수들의 눈물’이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금메달을 따고 기뻐서 울든, 금메달을 따지 못해 서러워 울든, 우리 선수들의 눈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늘 마음이 아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도무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남자 유도 60kg급의 최민호 선수가 그랬고, 경기 10여 초 만에 한판으로 패해 은메달을 땄던 왕기춘 선수가 그랬다. 특히 울음을 삼키며 부모님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던 왕기춘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소치 겨울올림픽 때,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은퇴를 번복하고 금메달에 다시 도전했던 스케이터 이규혁이었다. 그는 세계 최강 스프린터였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가 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 후 했던 말이 그래서 유독 내 가슴에 남았다. “안 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어요.”

이제 ‘불굴’이라든가 ‘의지’ ‘극복’ 같은 말이 점점 버겁고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려는 인간의 마음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무모함을 넘어,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안간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규혁을 기억하는 건, 나 역시 아니, 우리 모두에게 ‘안 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우리가 있는 것 역시 바로 ‘그 안 되는 걸 하면서’ 고독한 시간을 견뎠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어떻게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지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내게 그런 믿음을 준 사람은 바로 올림픽에 참여해 최선을 다한 후, 실패한 선수들이었다. 세상엔 실패처럼 보이는 성공도 있는 법이다. 경기에서 아깝게 패한 그들이 획득한 건 금메달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영웅 칼 루이스가 유독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100m 경기에는 늘 이상한 패턴이 있다. 그는 80m 정도까지는 3, 4등을 유지하며 뒤처져 있다. 그러나 마지막 20m 지점에 들어서면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상대방을 치고 내달린다. 가장 놀라운 건 최고의 속도를 낼 때, 그가 짓는 여유 만만한 ‘미소’다. 맞다! 그는 늘 환하게 웃으며 100m 결승 지점에 1등으로 들어온다.

저토록 무서운 속도를 내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금메달을 따고 우는 선수와 웃는 선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어린 나이에도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해 본 사람에겐 결국 우승도, 패배도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가장 중요한 건 누구도 아닌 ‘내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을 있는 힘껏 즐겁게 끝내는 것이란 걸. 그래서 소치에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의 그토록 홀가분한 미소가 아름다웠고,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깨물며 환하게 웃던 박태환 선수의 저 기념비적인 웃음이 좋았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1990년대 기업 광고는 틀렸다. 우리는 위대한 2인자였던 혁명가 정도전을 기억하고, 아름답게 패배한 김연아도 기억한다. 올림픽엔 1등만 있는 게 아니다. 매번 이기는 삶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세상이 우리를 더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1등보다 멋진 2등과 꼴등도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이젠 멋지게 지는 선수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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