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국회, 선진화법 탓하면 또 파행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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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헌법재판소가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각하함으로써 새로 개원하는 20대 국회가 법안 의결을 놓고 또다시 파행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생경한 3당 체제로 출발하는 20대 국회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상시청문회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정치권이 경색 국면으로 바뀌었다. 야당들은 여당인 새누리당은 안중에도 없고, 청와대를 겨냥한 비난의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또다시 야당 대 대통령이라는 지겨운 정치 갈등의 구도로 환원된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속내는 현행 선진화법이 20대 국회에서 야당연합의 정치 압박을 방어할 수단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위헌 결정이 났더라면 실리적으로 도움이 되었겠지만 각하 결정은 법 수정을 반대했던 자신들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것이다. 따라서 20대 국회에서 선진화법 개정을 추진할 정당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현재 국회의석 분포에서 여야 합의 없이 쟁점 법안의 정족수인 180석(재적의원 5분의 3)의 연합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20대 국회에서 정당들이 선진화법을 빌미로 다시 정치공세를 하면 파행을 초래할 뿐이다. 우선 이 법의 도입 취지를 봐도 정치공세에 나설 이유가 없다. 18대 국회까지 다수결을 내세운 여당의 국회 운영과 이에 반발하는 야당의 반복적인 극한 대립은 해머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른 국민의 강한 정치적 불신에 굴복하여 19대 국회부터 적용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의 취지는 국회가 다수결뿐만 아니라 합의적 의사결정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의제 방식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반영돼 대표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회 운영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오랫동안 다수결 결정 방식에 익숙한 정치문화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사회가 다분화할수록 강조되는 가치다.

다수결은 다수에 의한 횡포가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회선진화법은 다수의 일방적 권력과 소수의 일탈적 저항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임에 틀림없다.

여당은 선진화법을 볼모로 한 야당이 식물국회를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법 개정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초다수제(super majority)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제도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합의의 여지가 거의 없는 여당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대통령 반대에 골몰한 야당의 한계로 인해 선진화법이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여야 각 당의 본질적인 내적 변화가 없다면 법 개정이 국회를 개선시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현행 3당 체제에서 정당연합의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더 크다.

선진화법 이전에도 합의 원칙은 중시돼 왔다. 새삼스레 선진화법이 합의를 명문화했기 때문에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원래 교섭단체 간 의사일정이 합의되어야 국회가 개원할 수 있고, 본회의뿐만 아니라 상임위원회에서도 여야간사 간 합의가 있어야 심의법안 상정이 가능하다. 선진화법 이전에도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은 합의였다는 점에서 공연히 선진화법 때문에 국회 운영이 마비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20대 국회 운영이 시작부터 이 문제 때문에 파행을 거듭할 경우 자칫 총선으로 보여준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더욱 증폭될 것이 우려된다. 원래 정치의 목표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통한 협력이라는 점을 되새기고 합의 정신을 살려 나가야 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국회선진화법#헌법재판소#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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