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성인]가계부채 문제 제대로 해결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가계부채 문제가 날로 커지고 있다. 1200조 원대의 총규모도 문제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규모나 원리금 상환 비중이 과도한 것도 문제다. 그동안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국내 학계와 해외에서는 끊임없이 그 잠재적 위험을 경고해 왔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장차 우리나라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할 때는 가계부채 문제를 한국 탈출의 꼬투리로 삼을 것이다.

가계부채 위험이 이처럼 급증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저성장이다. 조금 단순화하면 소득이 시원찮은데 소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빚이 늘고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소비 항목은 소득 계층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생계를 위한 소비가 중요하고,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주거용 소비나 교육소비가 한몫을 할 것이다.

금융기관의 안이한 대출 행태도 가계부채의 급증에 기여했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가계대출이 가장 짭짤한 대출이다. 가계대출은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여러 신용공여 형태 중 가장 연체율과 부실률이 낮은 자금운용 수단이다. 정교한 신용심사 능력이 필요한 기업대출과는 달리 취급도 용이하다.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권자에게 유리한 채권추심 제도나 법원의 최근 판결 성향도 이런 안이한 대출 행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채에 의한 성장’ 방식에 의존해 온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큰 문제다. 끊임없이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하는가 하면, 소비 진작 역시 가처분소득의 증대보다는 ‘빚내서 소비’하라는 정책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가계가 부채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가계부채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향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을 뒤집으면 된다.

우선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것도 부채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부채를 줄이면서 성장’해야 한다. 즉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소득을 높여주는 방식의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의 안이한 대출 행태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 핵심은 가계대출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장사가 아니라 ‘기업대출 못지않게 어려운 장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이 변해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하다”는 시각은 철저하게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만 금융기관은 안 망한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은 매우 뿌리 깊은 것이어서 정부는 최근까지도 “가계의 부채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자산이 더 많기 때문에 큰 문제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가계부채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려면 정부부터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균형 잡힌 견해를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을 성장 정책과 접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 있다. 소비의욕은 크지만 가계부채 상환 능력은 매우 낮은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자의 신용채무는 과감히 탕감하여 가계부채의 총규모도 줄이고, 채무자의 삶의 조건도 향상시키고, 총수요도 진작하는 것이 그것이다. 부채 증가가 성장정책이 아니라 부채 탕감이 성장정책이라는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동안 안이한 대출을 일삼으면서도 단 한 번도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금융기관의 행태에 따끔한 교훈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가계부채 정책의 주무부서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주된 관심을 가지는 금융위원회에서 경제성장에 관심을 가지는 기획재정부로 이관되어야 한다. 물론 기재부 장관이 금융기관을 먼저 챙기거나 부채에 의한 성장에 익숙한 부동산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가계부채#소득#소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