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호]‘국회 심판론’ 나올 만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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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야당 대표가 정치 경험이 없어서 협상하기 어렵다.” “여당 대표가 협상 주체로 나섰는데도 권한과 재량이 없고 제동을 당하는 것 같았다.” 선거구 획정 실패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며 여야는 선거구 획정 두 번째 시한을 넘겼다. 왜 그랬을까? 여야의 관심은 선거구 획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법정시한을 앞두고 여야가 그 나름으로 노력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선거구 재조정 필요가 생긴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1년하고도 한 달 전이다. 선관위 정치개혁안이 2월에 나왔고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3월에 구성됐다. 정치권이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논의해 결론을 냈어야 하고 낼 수 있는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키지 않았다.

정치권의 비겁함과 무책임이다. 앞서 선거구획정위가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들끼리도 안 되는 것을 획정위에 떠넘겨놓고 장막 뒤에서 사실상 통제하며 획정위가 합의 못하게, 합의 안 되게 한 것이다. 획정위가 제 기능을 하려면 세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의원정수, 지역구와 비례의원 비중 그리고 획정 기준’이다. 그런데 국회가 획정위에 제공한 것은 의원정수뿐이다.

획정위원은 국회 정개특위에서 선정했다. 추천 절차는 거쳤지만 최종 인선은 사실상 양당이 4명씩 나눴다. 위원회에서 여야의 정치적 대표성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여야 동수로 구성돼 의사결정을 위한 3분의 2 동의를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당별 동수 추천으로 위원회가 구성되면 독립적이고 공정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당파적 추천 방식으로 위원회가 구성돼 대리전이 불가피하다. 이런 구조와 상황에서는 획정위가 독립적이며 공정하게 선거구를 획정할 수 없다.

선거구 획정의 두 번째 시한을 앞둔 여야가 과연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입으로는 시급하다면서도 속으로는 느긋하지 않았을까?!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현역 의원이다. 결국 선거구 획정이 표류한 것은 ‘이심전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작전’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총선 한두 달 전에 선거구 획정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 20년 동안 법정기한에 선거구 획정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두 번, 한 달 앞두고 된 게 세 번이다. 따라서 시한에 맞춰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은 과거와 다르다. 선거구 구역표가 무효화돼 기존 선거구가 불법화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의 선거구 효력이 12월 31일까지다. 12월 15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인데 12월 31일까지 선거구가 획정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예비후보제가 완전 무력화된다. 예비후보자는 자신을 알릴 수도 없고 후원회를 구성할 수도 없다. 반면 현역 의원은 의정활동 형식으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경쟁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현역 의원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러니 대통령 임기 후반 총선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심판론’이 먹히는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의 ‘정권 심판론’과 ‘국회 심판론’에 공감하는 비중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선거구 획정에 대한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당연하다. 정치는 공공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공공의 일이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공성이다. 공공성의 한 축이 공익 추구인데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행태는 특정 집단 이익 우선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국회#심판론#정치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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