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충상]대법관 증원보다 상고법원 설치가 답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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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법원은 전원합의체로 토론… 16명 넘으면 원활한 진행 불가능
G7중 법관 16명 넘는 나라 없어… 상고법원 2015년내 입법 마무리해야

이충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이충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원 사건이 연간 3만7000건을 넘어 대법관 1명당 3000건을 초과하자 상고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널리 공감을 얻고 있고 개선 방안 중에서 상고법원 설치 또는 대법관 대폭 증원으로 의견이 압축됐다. 상고법원 설치가 헌법에 합치된다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대법관의 증원은 문제가 많다.

주요 7개국(G7) 중 최고법원 법관 수가 16명을 넘는 나라가 없다. 그 이유는 최고법원은 법관 전원이 하나의 합의체(one bench)를 이루어 토론해야 하는데 16명을 넘으면 제대로 토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7년까지 일본의 최고법원이었던 대심원의 법관(부장판사와 판사로 나뉨)은 최대 47명이었으며 장관급이 아니었다. 1947년 최고법원을 최고재판소로 변경하고 재판관이 15명으로 되면서 장관급이 됐다. 1951년 최고재판소 사건이 연 1만 건에 접근한 후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을 30명으로 증원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 제안에는 판례 변경 등의 권한이 있는 대법정(전원합의체)의 구성원을 30명 중 누구로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었다(30명이나 되는 재판관이 법정에 2열 횡대로 앉아서 선고하는 것은 우습다).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 단도 시게미쓰(團藤重光) 등 저명한 법학자들이, 최고재판소에 대법정 구성원인 A급 재판관(대판사)과 대법정 구성원이 아닌 B급 재판관(소판사)의 두 직급을 두는 것도 이상하고 직급과 임명 절차를 동일하게 한다면 누구는 대법정 구성원이고 누구는 아닌 것도 이상하며 이는 중대한 ‘결함’이라고 비판했다. 소판사에게 ‘최고재판소 재판관’이라는 이름만 붙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서 최고재판소는 상고법원 설치를 제안해 사회 각계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1958년 중의원 해산으로 법률안이 폐기됐다. 1960년에 새 변호사 회장 오카 벤료(岡弁良)는 종전 회장과 달리 상고법원 설치안(최고재판소의 방안)을 지지했으나 그 무렵에는 사건 수가 꽤 감소해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사건 수가 많이 늘자 결국 상고허가제 확대 시행 쪽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한국도 일본과 공통점이 많다. 대법원의 상고법원안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집행부는 대법관을 38∼50명으로 증원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일본에서의 지적과 같이 중대한 결함이 있다. 더구나 우리는 대법관을 선임하기 위해 후보자 천거, 추천, 제청, 인사청문회, 국회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38∼50명으로 늘리면 1년 내내 대법관 선임 절차가 계속돼야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법관이 100명을 넘으니까 한국도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독일의 최고법원은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담당하는 연방헌법재판소이고 헌법재판관은 16명이다. 민사·형사사건의 상고심을 담당하는 연방일반법원의 법관은 128명인데 법원장, 부장판사, 배석판사로 나뉘어 있고 직급이 R10부터 R6까지 다르며 ‘대법관’이라고 할 수 없다. 프랑스 파기원의 법관도 부장판사와 판사로 구분되며 ‘대법관’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우리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명시하면서 대법원에 대법관을 두고 대법관 사이의 지위와 권한의 동등을 예정하고 있다.

우리 법원조직법에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사건 수에 따라 대법관 수를 수십 명씩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부 장관도 10여 명을 넘은 적이 없다. 그리고 최고법원 법관 10여 명이 제대로 재판할 수 있는 사건은 많이 잡아도 연간 수천 건에 불과하므로 상고허가제가 바람직하지만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 폐지된 역사가 있는 이상 상고법원을 설립해 대법원에서 재판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제3심 재판을 충실히 담당케 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발의된 상고법원안은 모든 사건을 대법관이 일단 심사한다는 장점도 있다.

완전무결한 제도는 없다. 상고심 개선 방안 중 상고법원 설치가 상대적으로 최선책이다. 상고법원 설치는 진보, 보수와 상관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년 중에는 상고법원 입법이 꼭 마무리돼야 한다.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회의 책무 포기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충상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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