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정희]을미년, 생명의 시간을 되찾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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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문정희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눈부시게 하얀 날개를 펼치고 새해가 온다. 정갈한 두 손으로 감사히 받고 싶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이 처녀림 같은 시간 앞에 심호흡을 하고 새해 새 시간을 축복처럼 흡입하고 싶다.

아직 아물지 않은 지난날의 여러 상처와 불안과 슬픔들을 조용히 만져 본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돌아본다.

시인은 숨 쉬는 법을 언어로 표현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장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정확하게 생명을 표현한 것이 시인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가장 정확한 언어를 쓰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참을 수 없이 타락한 언어들이 은거하는 폐차장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사방에 물이 새는 집에 세든 사람처럼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어디를 눌러도 악취가 나고, 어디를 쳐다보아도 거짓과 엉성함과 편법이 판을 쳤다. 입을 틀어막아도 “이대로는 안 돼!” 이런 비명 아닌 비명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었다. 정신과 가치의 위기라고 그럴듯하게 말하고 끝낼 일이 결코 아니었다.

비극적이고 애통한 죽음들 앞에 망연자실하며 그 죽음의 의미와 생명의 가치를 알고 싶었지만 트라우마만을 깊게 안은 채 길고 비극적인 죽음들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상투화되어 가는 비극들을 참담하게 바라보며 진저리를 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아침, 선물처럼 다시 새해가 왔다. 새해는 마침 광복 70년의 해. 광복이 아니라 분단이 고착된 땅이기도 하지만 절대 빈곤에서 산업화로 치달아 가면서 미친 속도로 질주했던 욕망과 가치 전도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냉장고에 쇠고기를 넣어두고 차고에는 차 한 대도 세울 수 있었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 사이 정신은 고갈되고 정직한 언어는 실종되고 검은 짐승처럼 에워싼 물질 가치 앞에 시달리는 가련한 노동자들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사막을 가는 유목민은 지치지 않아도 가끔 가던 길을 멈춘다고 한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신비한 정기로 충만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호흡을 조절한다고 한다. 너무 빨리 걸으면 정신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봐 정신과 함께 가기 위한 것이다. 이런 시간을 우리는 생명의 시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시간을 되찾을 때인 것이다.

글로벌 시대, 무한경쟁 앞에서 잠시도 가만히 서 있을 수 없고, 앞으로 가거나 썩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유의 언어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이다. 그저 앞으로 달려만 가는 것은 야만과 착취의 시간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아야 한다.

요즘 다행히도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는 인문학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벼운 노하우나 지름길을 안내하는 수준의 입문서나 욕망과 허영을 쉽게 위로하고 달래는 비법으로의 인문학이 아니라 언어로 본질을 투시하는 인간 중심으로의 가치의 대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정보가 명령하는 데로 몰려다니는 바보가 아니라 삶의 감동을 스스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명상도 일종의 광산 아닌가? 그럼 나도 파야지.”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렇듯 정신의 거대한 갱도 속으로 들어가서 자유와 존재의 의미를 기쁘게 찾아야 할 것이다. 대결과 적대의 무기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장엄한 대문호들의 산맥을 자랑스럽게 펼치던 숨이 멎을 듯이 부러운 러시아 올림픽의 서막 장면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도 짐승의 시간, 속도와 욕망의 시간에서, 사람의 시간, 생명의 시간으로 대전환 해야 한다. 새해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 앞에 바로 그 절박한 가치의 시간이 눈부신 첫 날개를 펼치고 있다.

문정희 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을미년#새해#새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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