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태주]정부가 勞勞 갈등 부추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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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고용은 삶이자 복지이며 인권이다. 한국 사회 삶이라는 게 고용 말고는 기댈 언덕이 없는 벼랑 같다는 얘기다. 그 고용을 정부가 너무 쉽게 흔들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정규직의 ‘쉬운 해고’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기업에서 해고가 어렵다 보니 비정규직을 쓰고 그것이 양극화를 낳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외국과 견줘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까지 경쟁하듯이 거들고 나섰다. 성과가 낮은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는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정할 수 있는지는 제쳐두더라도 그것이 ‘찍힌 노동자’를 찍는 수단이 되지는 않을까. 막상 해고된 정규직 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어떻게 정규직의 쉬운 해고로 둔갑해 버렸는지도 놀랄 일이지만 대기업의 고용이 안정적이라는 말에도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그곳에서 일하는 정규직의 고용은 불안하다. 자동화 외주화가 쉼 없이 진행되는 데다 해외 생산도 이제는 궤도에 올랐다. 생산성은 임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현대차 고용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노조가 강해서? 법으로 고용을 보장하니까? 천만의 말씀이다. 현대차의 고용을 지켜준 건 현대차의 호황이었다. 시장 변동에 노출된 현대차의 고용은 그만큼 유연하다. 유연하다는 것은 곧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과 비교하는 일도 식상하다. 그곳 사정이 우리와 다르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정부는 우격다짐으로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유연안정성이란 말이 있다. 해고를 편하게 하되 노동시장 정책으로 취업 가능성을 높이고 사회보장을 통해 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고가 되면 직업훈련도 시켜주고 먹고살 만한 소득도 지급한다. 유연안정성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덴마크에서는 소득의 70%를, 그것도 4년씩이나 보장한다(저소득층은 무려 90%에 이른다). 그러면 물어볼 수 있다. 그곳에서도 구조조정이란 말만 나오면 노조가 사활을 걸고 싸우는지, 노동자가 해고당하면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지? 그런 얘기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라고들 말한다.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데 대화가 가능할까. 정부가 노조와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어렵사리 노사정위원회의 문을 열어놓고선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하는 게 정부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의 핵심 설계사로서 신뢰를 얻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은 기재부 장관이 취임할 때 한 말이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한 약속들도 기억한다. “불법파견이 확인되면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해서 바로잡겠다”고 했고 “정리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요건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노동시장은 바꿔야 한다. 하지만 ‘혁명적으로’ 갈아엎기보다 한 걸음씩 대화를 해가며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제발) 노조도 인정하고 (제발) 약속도 지키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 냉혹한 수치에 담긴 기업의 경쟁력만 보지 말고 고용에 담긴 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애환을 봐야 한다.

되지도 않을 의제를, 그것도 생뚱맞게 내세워 우리 사회를 노노(勞勞) 간의 전쟁터로 만들면 누구한테 도움이 될 것인지를 이제는 물어야 한다. ‘개혁’이니 ‘국가개조’란 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일까. 스스로는 바뀌지 않고 남을 바꾸려다 보니 개혁은 늘 겉돌기 마련이다. 차라리 임기 중에 다 하겠다고 부지런 떠는 정부 말고 게으른 정부를 보고 싶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고용#개혁#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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