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근]민영방송보도 국감은 나라의 수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 아닌 정쟁이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대체로 정치가 지배하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낙후되었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세계 2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가장 성공적으로 정치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다소 의아스럽다.

경제, 사회 모든 분야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던 정치권이 드디어 이번에는 민영언론사들의 보도까지 국정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채널A’와 ‘TV조선’ 보도 책임자를 증인으로 소환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보수 언론사들을 집중 공격해왔던 야당의 이력으로 보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영방송도 국영방송도 아닌 민영방송사들의 보도를 국회 정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기 그지없다.

언론 독립성 같은 규범적인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안 든다고 무차별 국정감사 대상으로 삼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쟁 만능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국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종합편성채널 보도 책임자들을 국회에서 소환한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우선 언론사 보도의 잘잘못을 정치권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보도 공정성 같은 문제는 전문심의기구는 물론이고 법정에서도 단칼에 무 베듯이 판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상설 전문기구에서 심의하고 또 제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재 이 종편채널들에 대한 재허가 심의도 진행되고 있다.

설사 보도 내용이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호통 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보도 책임자들을 앞에 놓고 여야 의원들끼리 말싸움만 벌일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우리나라 국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갈등만 유발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종편채널 보도 책임자를 소환한 것은 종편채널을 정치 쟁점화하겠다는 정략적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다음으로 언론보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 자체가 언론 자유를 가장 위협하는 일이다. 언론은 발생 초기부터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왔다. 그래서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사와 정치는 가까우면서도 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특정 정파가 불만을 가졌다고 노골적으로 언론사와 직접 갈등하는 것은 정말 저급한 수준의 정치문화이다. 심지어 국가가 언론사를 지원하는 것조차 언론 독립성 문제를 들어 꺼리는 선진국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언론 자유와 관련해 심각한 전례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서 소환한 두 방송사를 포함한 종편 방송사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평가를 할 수 있다. 또 정파마다 보도 성향의 유불리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정쟁화하는 것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리어 존재하고 있는 심의기구들만 무의미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자기들이 법으로 만든 기구의 존립 자체를 무시하는 셈이다. 결국 종합편성채널의 보도를 국정감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을 ‘정치 지형화’시키고, 그래서 이 나라를 ‘과잉정치 국가’로 만든 정치권의 무책임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민영방송#국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