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종후]국가통계 독립성이 필요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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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후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국가통계연구회장
최종후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국가통계연구회장
통계청은 2011년 9월 1일, 제17회 ‘통계의 날’을 맞아 ‘국가통계 기본원칙’을 제정해 선포했다. 국가통계 기본원칙은 통계작성기관과 종사자가 통계 생산과 서비스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가치를 담고 있는데 8대 기본원칙의 앞자리에는 ‘중립성 보장’과 ‘신뢰성 제고’가 담겨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나라 국가통계는 이 원칙에 충실한가?

지난달, 한 언론이 통계청에서 작성한 일부 국가통계의 발표 시기가 상부 기관의 압력에 의해 조정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지니계수 관련 사례이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소득 불평등이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소득분배지표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새 지니계수를 도입했다. 표본 수를 크게 늘리고 고소득자 소득을 반영해 11월 9일 공표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대선을 앞두고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와 공표 시점이 대선 뒤로 미뤄졌다. 새 지니계수를 적용하면 우리나라 소득분배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8위에서 29위로 떨어진다. 분배지표가 개선되는 추세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주장과 달리 양극화가 심화됐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통계 발표 시기를 늦추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 양파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수입하는 양파 물량을 대폭 늘렸다. 농민들은 양파 수입에 격렬히 항의했고, 2012년 7월 초에는 대규모 농민대회를 열었다. 당시 양파 생산 농민들은 “유통 구조와 가격 결정 체제를 손봐야지, 양파 수입으로 가격만 낮추려 들면 우리 농민들은 다 죽는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농민대회가 열리는 등 농심이 들끓어 오르자 결국 2012년 7월 말께 발표 예정이었던 양파·보리·마늘 생산량 가운데 양파 생산량 통계만 8월 말로 늦춰졌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드러난 사실은 통계 공표 시점이 정권 차원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의해 임의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국가통계의 정치적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국가통계의 독립성은 국가통계 시스템에서 권력 개입이 불가능한 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확립된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이 기획재정부의 외청으로 역대 통계청장의 대다수가 기재부에서 내려왔다. 그와 더불어 통계청 주요 국장의 상당수도 마치 징검다리 인사 모양으로 기재부에서 내려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통계청의 전문성은 낙후되고 통계청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조직으로 변해간 것이다. 지금 기재부 장관은 국가통계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국가통계위원회 의장까지 맡고 있다. 국가통계위원회는 통계제도의 개선, 발전, 장단기 통계발전계획, 유사·중복 통계의 조정, 통폐합 등을 심의하는 통계청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통계 최고의 기구이다.

통계청의 대외적인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통계선진국처럼 중앙통계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관련 법률 제정이 검토되어야 한다. 통계청은 기재부에서 독립되어 그 위상이 강화되어야 하고, 통계청장은 국회의 동의 절차 또는 임기제 보장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기재부와의 사전협의제도는 조속히 폐지되어야 하고, 통계 공표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보강되어야 한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 영국의 통계청인 ONS(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를 정부조직에서 독립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0년 6월 영국 국가통계위원회가 태동한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통계청의 ‘독립성 강화’를 위하여 혁신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가통계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최종후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국가통계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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